▲ 장 보 연 교수

어느 날 딸아이가 부엌에 들어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게 청구서를 내 민다. 이 청구서에는 1주일동안 자신이 한 일과 청구금액이 적혀 있었다. 내방 청소한 값 2000원, 엄마 심부름 값 1000원, 엄마 시장간 사이에 동생을 돌봐준 값 3000원,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000원, 아빠구두 4컬레 닦은 값 4000원, 합계 13000원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조건 있는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에 엄마는 조건 없는 사랑(아가페)으로 응수 한다. 엄마는 잔뜩 부풀어 있는 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딸 아이의 청구서 뒷면에 아가페 사랑을 써 내려 갔다. △너를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세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값 무료 △널 키우며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린 값 무료 △장난감, 음식, 옷, 네 코를 풀어 준 것도 무료 △너에게 쏟은 사랑과 정까지도 무료 등등

엄마의 자식에 대한 아가페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엄마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준다. 생명까지도 내어준다. 그러나 자식은 모든 것에 조건을 붙인다. 그래도 이 아이는 엄마의 위 내용의 청구서를 보고, 마음의 변화를 받는다. 딸 아이는 엄마의 청구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다 지불되었음”이라고 쓴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수증인가.

엄마와 딸이 주고받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부모에 의해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조건을 건다. 자식은 부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오늘의 세계에서 이 아름다운 영수증은, 이 무더운 여름에 우리에게 훈훈함을 더해준다. 이것이 바로 가족공동체이며, 인정공동체가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살맛나는 세상이다.

그렇다 부모가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쏟듯이,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무조건 아카페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 주신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우리에게 햇빛도, 아름다운 밤하늘도, 공기도, 단비도, 4계절도, 새들도, 몽땅 무료로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장애인, 떠돌이, 목자, 창녀, 세리 등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현하셨다.

그리고 너와 내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인정공동체를 실천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모른다.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여기에 가두어 버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카페 사랑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엄마와 딸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사랑의 청구서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깨닫자.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어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에게 대가를 바라며, 요구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은 순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떳떳하다. 당연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효자와 불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손을 내미는 대로 다 들어주면 과보호가 되고, 불효자를 만든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 중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부모를 살해한다. 오늘 우리사회에 이런 뉴스들이 안방에 전달될 때마다 가슴 아프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쏟으며, 조건없이 주는데, 왜 자식들은 페륜아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너와 내가 주고받는 인정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모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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