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는 성직자와 교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안간힘을 쏟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가 깨지고 있다. 이런 연유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있게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숨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연합단체는 연합단체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7년 동안 고소고발사건으로 인해 연합단체로서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일부 교회는 원로목사와 후임자, 성직자의 도덕전, 윤리적 타락, 담임목사 세습, 성직자의 비신앙적이며, 비성경적으로 인해 교인과의 다툼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분명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를 통해 신앙공동체의 일원인 교인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 안에는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없다고 말한다. 수백억원 집어 삼킨 교회당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데도,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없다는데 한국교회는 말 그대로 참담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세습을 비롯한 성직자의 비신앙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성직자와 교인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빛을 잃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았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지를 않았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했다. 그렇다 교회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공동체이다.

특권을 누리기 위해 주도권을 잡아 볼 속셈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파괴하는 자이다. 교회는 자기 욕심과 주장을 누르고, 하나님에게 자신을 드리는 곳이다. 교회는 우리의 생각과 뜻을 드리고, 우리의 몸 까지 바치는 곳이다. 우리의 삶 전체를 바치는 곳이다. 우리의 삶의 원천이며 목적인 하나님에게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신선한 교회가, 성직자와 교인들이 성서에서 이탈함으로써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데 서글프다.

왜 오늘 한국교회는 성서에서 이탈해 여기까지 왔는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중세교회의 신학자들은 초자연적인 종교, 계시종교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정화와 구원받은 자만이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마음의 정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구원받지를 못해 다툼과 분열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오늘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만든 법마저도 지키지 않으면서, 분열과 다툼은 이제 수습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것은 강동구에 위치한 교회, 서초구에 위치한 교회, 홍대 앞에 개척된 교회, 이천의 교회, 대치동의 교회, 구리의 교회, 가평 시골에 위치한 교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 연합단체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대표회장=이광용 목사)를 보면, 오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세워진 교회와 연합단체들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초자연적이며, 계시종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제도화되고, 그 주도세력인 성직자들이 권력투쟁에 몰입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어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 성직자들의 권력의 몰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교회공동체의 일원들에게 혼돈과 혼란을 주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든, 헤라인이든 성령으로 하나 되라고 했다. 초대교회는 이런 원칙을 지키며, 복음을 세계에 전파했다. 그렇다 교회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헌신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 다툼을 여기에서 멈추고, 돌아서자. 한 성령 안에서 하나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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