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사람들은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소유의 획득을 삶의 중심가치로 삼고 살던 이들이, 소유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하는 새로운 경향이다. 유기농 음식, 쾌적한 환경, 정서적 안정 등이 이들이 추구하는 조건들이다. 웰빙의 주된 관심은 ‘몸’이다. 그리하여 ‘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즉 ‘몸’의 절대화로 이어진다.

그런데 성서세계, 특히 예언자 세계로 들어가 보면, 인간다움의 삶은 ‘몸’이 아닌 ‘영혼’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깃들어 있는 영혼에 풍요가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영혼은 황폐, 절망, 굶주림밖에 없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고, 그 결과로 안전과 평화가 실현”(사 32:16-18)된다. ‘성령의 사회적 성격’을 말하는 대목이다.

몸을 삶의 중심가치로 여기는 웰빙족이 요즘만 있는 건 아니다. 저 옛날 이사야 시대에도 웰빙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 32장에 나타난 여인들(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한다)이 그들이다. 저들의 몸은 행복에 취해 있다. 양식이 풍족하여 일할 필요도 없고, 배고픔의 걱정도 없다. 마실 것도 풍족하고, 입을 것도 모자람이 없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영’ 따위는 필요치 않다. 매달려 기도할 필요도 없다. 장래 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먹고 마시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모양만 다를 뿐 틀림없는 웰빙족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이사야는 가혹한 심판을 말하고 있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물질이 아무리 풍족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떠난 곳은 결국 폐허로 변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이다. 실제로 풍족하게 살다보면 정신적으로 해이해지기 쉽다. 무질서해지기 쉽다. 양심도, 도덕도, 정의도 사라지기 쉽다. 마침내 그들의 땅은 폐허로 변하게 된다. 웰빙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서는 안 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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