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근자에 남북화해무드와 정상회담을 계기로 갑자기 ‘민족’이란 단어가 속칭 뜨기 시작했다. 우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서 조차 ‘조국과 민족’이라는 표현을 뺀 2007년 개정문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대체되었다. 우리에게서 민족은 그야말로 피를 끓게 하는 선동적 요소가 있고, 일면 자랑스러우면서 일면 국치의 아픔을 담은 특별한 개념이다. 이런 고부가가치를 가진 단어를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조차 뺀 우리가 갑자가 민족이란 단어를 양산하고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문에서 ‘민족’이라는 단어는 10번 사용했다. 7분의 짧은 연설치고는 매우 많은 사용빈도인데, 역사적 현장에서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역설하는 것이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 기회에 남북한의 민족 개념이 과연 일치하는 지에 대한 매우 진지한 본질적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일민족의 개념을 넘어 세계화의 다민족 국가로 이미 진입했다.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에 이르는데 이는 사회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숫자이다.

원래 민족이란 개념은 세계적으로 보면 우파보수 성향의 전유물이다. 민족은 외세에 대하여 수구적이고, 체제에 대하여 보수적이며,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이다. 이런 민족 개념을 진보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공격적으로 대하였고, 이를 허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진보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민족이라는 용어를 점유하며 운동권 인사들의 메인 키워드가 민족인 반면, 보수우파 성향의 인사들은 민족이라는 용어를 즐겨 쓰는 성향의 사람들을 백안시하고 경계하며, 이 사람들을 종북 혹은 친북 성향의 인사들로 구분하곤 하였다.

현재 남한의 민족개념은 진일보한 다민족의 하나됨을 지향에 온 반면, 북한은 여전히 단군자손으로서의 단일민족을 의미한다. 아직은 단군자손이 주류인 까닭에 별일 없지만 통일을 대비하여 이 문제는 그 어느 개념보다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지금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큰 방향에서 틀린 것이 없다는 명분으로 각론에서 상당한 괴리감과 상실감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민족 개념, NNL 문제, 남북경협 등등은 어딘지 모르게 너무 저자세라는 느낌은 장기적으로 유익하지 못하다.

통일 논의는 포퍼먼스로 해서는 안된다. 서독의 예를 보듯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정상들이 모여 원샷으로 처리해 버릴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해 집단의 갈등구조와 국제적으로 정치 군사적인 문제들의 난맥상이 그야말로 지뢰밭인데 지금 여기저기서 던지는 통일의 환상과 장밋빛 미래가 우리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통일 논의에서 수도 없이 경험했다.

물론 이번 경우는 매우 특이하고 의미심장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면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우리 문대통령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와 문대통령은 임기가 있고 김정은의 정권이 항구적이란 보장이 없다. 우리가 외치는 ‘우리 민족끼리’는 너무도 간절하고 짙은 감성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국제정치에서 이것은 집권자들의 쇼맨십에 주요 소재일 뿐이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위치에 따라 이 통일논의는 단 한순간에 10년 20년 뒤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간과하면 얼마 못가서 그들의 쇼는 국민에 의해 중단되고 말 것이다.

전통적 민족이란 개념을 되살린 것이 잘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계기로 통일 대비 전반적인 개념 정비를 민관협력 차원에서 신속히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나중에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통일 동력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과거 공산혁명의 주요 수단이 언어 혼란 전술이었다.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에서의 민주와 공사사회주의에서의 민주의 개념은 다르다. 이런 상처를 가진 후세들 입장에서 상호 개념의 차이가 가져올 혼란을 예견하며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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