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9월1일은 UN이 정한 ‘국제 노인의 날’이다. 그리고 2일은 우리정부가 정한 제22회 노인의 날이다. 노인의 날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의 어르신들을 돌아보고,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라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어르신들의 삶은 풍요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은 주름진 만큼이나 고달프고 힘겹다.

한마디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삶은 궁핍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많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얼마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어찌보면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데 매우 좋은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 어르신들은 한국경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말 그대로 어른이다.

또한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길쌈해서 가족들에게 옷을 입혀주었으며, 아버지는 농사짓고 나무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공동체인가. 때문에 어르신들은 오늘 가족으로부터, 국가로부터, 교회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하며, 그 대가를 보상받아야 한다. 헌데 이 땅의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에서 밀려나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거리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내어주고도 모자라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까지도 내어준다. 예수님도 나누고 나누다가 마지막에는 우리에게 생명까지 나누어주지 않았는가.

그 옛날 어느 마을에 효부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장을 갔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집에 돌아오시지를 않았다. 시아버지를 기다리며 걱정을 하던 며느리는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마중을 나갔다. 가다보니 어느새 고개 마루까지 오르게 되었다. 저만치 등잔불 같은 불빛 두 개를 보고 가까이 다가간 며느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호랑이 한마리가 술에 취한 채 바위에 웅크리고 잠이든 사람을 막 해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시아버지였다. 호랑이가 발을 들어 노인을 덮치려고 하는 순간 "안 돼" 히며, 며느리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치고 달려가 시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호랑이는 멈칫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여인은 등에 업고 있든 아기를 내려놓으며 호랑이에게 사정을 했다. "이 아이를 드릴테니 제발 우리 시아버지를 해치지 말아요" 그리고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시아버지를 들쳐 업고는 고개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서야 정신이 번쩍 든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날 새벽 아무것도 모른 채 잠에서 깬 시아버지가 손자를 찾았다. 며느리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전날 있었던 일을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시아버지가 벌컥 방문을 열고는 고갯길을 행하여 달렸다. 며느리도 울면서 시아버지를 뒤쫓아 갔다. 고개 마루에는 아기도 호랑이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 길 가던 한사람이 어떤 아기 이야기를 했다. 건넛마을의 부잣집 주인이 새벽에 보니 볏섬 위에 웬 아기가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가서보니 어제 밤 호랑이에게 던져주었던 아기가 볏섬 위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며느리가 달려가서 덥석 아기를 안았다. 부잣집 주인이 여인에게 사연을 물었다. 여인은 전날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들은 부잣집 주인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늘이 당신의 효성에 감동해서 아이를 살려 주었군요. 이 볏섬의 주인은 이 아이입니다."

여인은 사양을 했지만 주인은 하인을 시켜 쌀 백 섬을 이 아기의 집에 실어다 주게 했다. 그렇다. 사람은 바뀌고 세상은 바뀌어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을 움직 일만한 효성이 여전이 그리운 세상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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