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기는 교회에 희망 없다”‘돈’의 위력 앞에 무너지는 성서의 본질과 가치를 점검한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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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16: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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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

요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기적을 기다리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요즘 상업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세계는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긴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종교와 정치가 야합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혀 왔고, 괴롭히고 있다. 오히려 종교가 타락해 맘몬을 더 섬기며,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과 종교의 본질을 상실했다.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돈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 안에서 다툼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한국교회는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돈!돈!돈! ‘악마의 금전’에 대한 소리만 들린다. 돈 때문에 담임목사의 세습이 일어나고, 돈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며, 연합단체가 부자교회에 의해서 농락당하고 있다. 또 돈 때문에 연합단체가 맘몬에 갇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아들목사가 20-30대 교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다. 이제 한국교회가 말하는 하나님나라운동은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이 아니라, 맘몬을 부르짖으며, 부자교회와 부자교인들에게만 있다.

그것은 교회가 맘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된 이후 미국을 정점으로 상업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교회도 여기에 편승돼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성직자는 제왕적인 목회자가 되어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상실했다. 교회의 십자가는 지붕 위에서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십자가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없다.

신자유주의 상업적 자유주의 갇힌 오늘날 세계는, 부자 나라는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는 부자나라의 돈을 빌려 고리대금업을 한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한 이후, 미국을 정점으로 한 세계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영역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부시가 말한 “새로운 세계질서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일본과 유럽을 두 극으로 삼아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확고하게 다져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미국식 세계화는 제3세계 국가와 민족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들의 문화는 민속이 되었다. 언어는 방언이 되었고, 예술품은 민속품이 되었다. 이들의 역사는 ‘일식의 역사’가 되었다. 오늘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남한 정부를 향해 ‘미국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대한민국이 미국 일극체제에 편승돼 있기 때문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성조기를 거리로 들고 나와 미국의 대통령을 연호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500년 전 세계화의 꿈은 15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초기 자본주의와 항해술이 결합되면서, 세계로 확대되었다. 당시 콜럼버스는 “하나님이 승리 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우상들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라는 아구스티누스의 기도를 굳게 믿고 항해에 나섰다. 기독교적 세계화의 꿈은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를 통해 식민주의 혹은 제국주의적 세계화의 의지와 구체적으로 결합되었다. 그 결과 세계는 하나님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배척했던 맘몬이 승리했다.

세계화의 꿈은 오늘날 미국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복을 일삼고, 이러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민주주의의 수출로 미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경제 방식이 세계의 변두리까지 공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경향이자, 되돌릴 수 없는 운동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에 순응했고, 저항해서는 안된다.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며, 이를 찬양하는 교회이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수출 의존적이고, 취약한 한국 경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체제의 계획된 공격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일부교회, 왜 교회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었는가(?)

가난한 사람 외면하는 교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서 이탈
“‘맘몬’이 춤을 추고 있는데도 한국교회는 침묵으로 일과했다”


살기 힘든 사람들은 기적을 기다린다

IMF 이후부터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자본에 의해 좌우되었다. 노동시장은 김영삼 정부가 시행한 ‘비정규직과 근로자 파견’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악으로 으로 인해 노동자 절반이상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적이나, 파견근로자로 전락했다. 노동자의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대신 기업의 이익은 두 배로 늘었고,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다수가 실업자가 됐다. 노동자들은 빚더미에 올라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예언자 전통에서 이탈했다.

재래시장과 중소 자영업자들은 파탄에 이르렀고, 대기업들은 높은 이자를 남겼다. 이 때 나타나기 시작한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여파는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최악을 선택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 극복을 구실로 경기부양책을 쓰고, 가난해진 빈곤층에게 신용카드를 제약 없이 발급해 줌으로써 그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다. 이는 노동자의 삶을 각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 신용불량자를 대량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아니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기적을 기다리며, “내일은 괜찮아 지겠지”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 노동시장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귀족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에 속한 노동자들보다도 몇 배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그것도 모자라다고 아우성을 친다. 여기에서도 ‘맘몬’을 숭상한 결과, 돈에 미친 사람들이 인사부정을 저지르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을 한다. 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축복’을 강조한다.

김대중 정부는 서울은행이나, 외환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겨 막대한 이익을 챙겨주었다. 미국자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4년 만에 5조가 넘는 순이익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갔다. 당시 5조라는 돈은 5천만원짜리 서민주택 10만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50만명이 편안히 잠잘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힘 하나들이지 않고, 빼앗아 갔다. 이렇게 희망을 빼앗긴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장밋빛 노동정책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제 한국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귀족노동자가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은 분명하다.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1천년동안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아오면서도,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야훼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그날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즉 오랜 고난을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고난의 길이 없었다면,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오늘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는 이유는 “오늘은 비록 비가 오지만, 내일은 쨍하고 해가 뜬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 희망은 귀족노동자나, 정치인과 경제인 모두가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상생의 길을 찾을 때 가능하다. 맘몬에 길들여진 교회는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 ‘축복’으로 하나님을 파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저임금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가난하게 산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교회에서 조차 버림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교회공동체에서 이탈했다. 이것이 바로 자유라는 이름 아래 상업자본주가 가져다가 준 폐단이다. 오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많은 개발도상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아우성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자살을 선택했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교회의 본질 상실

우리는 이를 IMF 금융위기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사업자본주의에 편승된 한국교회도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가난한 이웃교회와 가난한 사람들과 등지기 시작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제3세계 국가에 대한 해외선교를 중단했다. 한마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중단한 것이다. 이때부터 교회의 교인 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교회들이 늘어났다. 중대형교회들은 떠난 교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웃교회와 교인쟁탈전을 벌였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곳은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그래서 선교신학자들은 “한국교회가 과거 부흥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양적으로 비대해진 일부 교회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사회와 교회의 암적인 존재로 타락해 가고 있다.

오늘 맘몬에 길들여진 일부 교회에서는 세습이 유행처럼 되어버렸으며, 담임목사의 아들목사가 젊은 여성 20명을 농락하고도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며, 교단이다. 오히려 세습을 반대하고, 목사의 윤리적 타락을 문제 삼는 교인들을 향해 ‘마귀’, ‘사탄’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잘못은 복음의 본질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양적으로 비대해진 일부교회는 삶의 현장에서 지친 노동자와 농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롭고 거대한 건물 짓기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며, 축복’이라고 말한다.

이런 교회는 분명 가난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교회이다. 교회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두꺼운 벽이 가로놓여져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지향하는 민족사의 앞날에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사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으며, 요즘은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교인들의 입에서는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평화(팍스)를 말하며, 사랑 대신 전쟁을 말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시도 때도 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예수님을 등진 교회가 되었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과 기성교회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는 없다. 부자청년처럼 재산이 아까워 노동자와 농민, 떠돌이, 미혼모, 다문화 가족을 외면하면, 이런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죽어서 잔해만이 역사의 유물로 남을 것이다.

참사랑과 참평화의 모습은(?)

반대로 예수님이 보리떡 2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5천명과 나누고도 12광주리가 남았듯이, 교회의 남아도는 재정, 목회자가 꼬불쳐 놓은 비자금을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나누고, 하나님나라운동에 투자하면, 그 교회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에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성서로 돌아가는 것이며,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과 은혜를 가로챈다면, 더 이상 우리사회와 교회의 미래는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향해 “말만 많은 사람”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오히려 세상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참사랑과 참평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교회가 상업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져 ‘맘몬’을 하나님보다 더 섬긴 결과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은 몰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나누며, 성서의 경제정의를 실천한 이들이 많다. 하루에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병든 부모를 모시고, 가난한 노동자와 떠돌이들을 위해서 나누는 노동자의 삶은 정장 약복에 넥타이를 맨 목회자의 거룩한 설교보다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잘 증거한다. 전태일 열사는 먼 거리를 출퇴근 하면서도 절약한 돈으로 굶주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다가 주는 등 누구보다도 감동적인 삶을 살았다.

병신춤을 춘 공옥진 여사는 병신거지들이 구걸해서 온 음식을 다리 밑에서 함께 나누고, 먹으면서 병신춤을 추었다. 거지인 최귀동 할아버지는 구걸할 능력이 없는 거지들에게 구걸해서 얻은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오웅진 신부는 이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행동에 감동을 받고, 행려병자의 집 ‘꽃동네’를 세웠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우리는 늘 생활현장에서 보아 왔듯이 가진 것 없는 자들만이 참된 나눔을 실현 할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이 바로 교회가 할 일이 아닌가. 우리 속담에 “열개 가진 사람이 한 개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 맘몬에 길들여진 상업자본주의를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사회는 연봉 1억을 넘게 받는 사람이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것을 더 빼앗으려고 한다. 그것은 공기업과 대기업의 국정감사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상업자본주의 신경제체제가 뿌리를 내렸다. 이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와 기업은 없다. 이제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과 유럽을 두 극으로 해서 금융자본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IMF와 같은 기관을 설립해 나라 간에 돈을 빌려주고, 빌린다. 가난한 나라들은 세계자본을 빌려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해 더 큰 부자가 된다. 제3차 오를레앙 종교회의는 성직자들은 물론, 모든 집사들에게 이르기까지 고리대금업을 악으로 보고, 못하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또한 착취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그 후 7세기의 교회법도 고리대금업을 금지했다. 고리대금업의 악행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도 고대교회와 중세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였다.

그런데 오늘 세계는 국기독교국가에 의해서 IMF라는 금융자본을 통해 성서가 금지하고 있는 고리대금업을 부활시켜,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한국교회 대형교회 중 어느 교회는 재정을 가난한 교회에 빌려주고, 갚지를 못하면 교회를 빼앗는 사건이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맘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어느 교회의 목회자는 150여명 되는 교인들을 내쫓고 택지개발 과정에서 받은 보상금 모두를 가로챘다. 만약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축복한다면, 누가도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오늘 교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교인이기를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보다도 맘몬을 더 섬기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는 완결적인 집단으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맘몬으로 대치시켰다. 그래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는 돈을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가난은 죄’라고까지 말한다.

이것은 분명 성서에서 이탈했고, 복음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돈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다.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은 “네가 가진 모든 재산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가진 것이 너무 아까워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못했다.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두 주인을 섬기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나라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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