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지 이틀째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다. ‘오던 길을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14:2; 민 33:7). 한 구절에 이렇듯 많은 지명이 섞여 나온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지역의 지리에 둔감하다면 어디를 가리키는지 명확히 알 수 없을 정도다. 구약에서 ‘믹돌’은 위 본문을 포함하여 여섯 차례 음역되어 나온다(출 14:2; 민 33:7; 렘 44:1; 46:14; 겔 29:10; 30:6). 창세기 11장에는 뜻을 살려 ‘대’(臺) 또는 ‘탑’(塔)으로 번역하였다(창 11:4). ‘성읍과 탑’을 가리켜 바벨탑으로 불릴 뿐 성경에서 ‘바벨탑’이라고 언급한 적은 없다.

과연 출애굽기에서 믹돌의 위치는 어디일까? 지리적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고고학적 성과가 꾸준히 보고된다. 2008년 5월 자히 하와스 이집트 문화재 사무총장은 고고학자들이 라파(Rafah) 지구에서 500m x 250m 규모의 성곽 도시를 발굴했다. 라암셋 2세(B.C.E. 1304 - 1237) 당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도로 ‘호루스 길’에서 진흙 벽돌로 세워진 성읍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성곽에 포함된 높이 4m 정도의 망루가 여러 개 확인되었다. 특히 이 일대에서 투트모세 2세(B.C.E. 1516–1504)를 새긴 부조가 발견돼 투트모세 2세의 축성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중 크고 위압적인 성곽은 790m x 393m 요새이다. 호프마이어(James K. Hoffmeier)에 따르면 이집트 국경에 여러 군사 시설들이 세워져 선왕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멘 마아트레의 망루,’ ‘라므세스 2세의 망루’ 등이 그것이다.

한편 오렌(Eliezer D. Oren)은 출애굽기와 구약에서 믹돌의 위치를 다양한 기록을 근거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는 논문 제목에서 암시하듯 카르낙 부조와 아나스타시 파피루스 등을 통해서 믹돌의 위치가 나일강 삼각주의 동쪽 경계라고 주장한다. 곧 팔레스틴에서 시내 광야를 지나면 끝자락 즈음에서 만나게 되는 이집트 국경 수비대가 위치한 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예레미아의 언급에서는 사뭇 다른 관점에서 믹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렘 44:1).

오렌의 연구에 따르면 위 인용은 당시 이집트가 점령한 식민지이거나 이주민들의 처소를 북에서 동으로 차례대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믹돌은 이집트의 동쪽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예레미야 46장에서도 믹돌은 가장 먼저 나온다(렘 46:14). 예언자 에스겔은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겔 29:10; 30:6)라고 지칭함으로써 믹돌과 수에네가 이집트 전역을 아우르는 관용적인 수사임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그 지역을 특정할 수 있는 물리적 증거가 있지는 않다.

하우트만(C. Houtman)은 믹돌이 나일강 하류 동북쪽이라기보다 비터 호수 남쪽으로 에담보다 훨씬 아래쪽인 텔 엘 헤르(Tell el-Her) 지역을 경계로 간주한다. 최근 스콜니크(B. E. Scolnic)는 앞에서 논의한 ‘사자의 은신처’가 호루스의 길에 있는 요새일 것으로 보고, 그렇다면 믹돌은 현재의 ‘텔 엘 보르그’의 남동쪽 3-5km 부근이라고 제안한다.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할 때 믹돌의 위치를 정확히 한 지점으로 일치시킬 수는 없으되 나일강 하류에서 이집트의 동쪽 국경선과 시내 반도의 서쪽 경계선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높은 망대 혹은 성곽이나 경계초소 또는 출입국 사무소 쯤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다음 호에서 믹돌의 어원적인 분석을 통하여 신약의 ‘막달라’와 관련하여 출애굽의 경로에서 믹돌의 의미를 추적하기로 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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