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 문 현 미 시인
누구나 눈에 얽힌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어떤 이는 아련한 사랑이 떠 오른다 하고 어떤 이는 눈썰매가 생각난다고 한다. 혹은 눈길에 엉덩방아를 찧었거나 추돌사고 같은 기억도 떠 오르리라. 그런데 나는 여전히 눈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곤 한다. 정말 눈이 내리는 날엔 이미 마음은 설원에 머무르고 있을 만큼 눈이 좋다. 그냥 이유 없이 좋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순백의 색이 무엇보다 좋고, 잠시지만 순식간에 아름답고 추한 모든 것들이 하얗게 채색되는 게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대개 눈이 희다고 하든지 아름답다고 하는데 시인은 처음부터 ‘눈은 가볍다’고 한다. 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계속 시를 읽어 내려가면 알 수 있다. 눈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시인의 마음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눈이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다고 바라보는 탁월한 상상력으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군가를 업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시인은 눈을 가볍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눈과 눈이 서로 업고 있다는 시적 전개가 가능해진다. 눈을 사람으로 상상하고 표현하는 의인화로 인해 독자는 하얀 눈에 자신을 투사하게 된다.

사람을 업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이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만의 독창적 시선으로 눈을 바라보기 때문에 힘든 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포근하게 느낀다. 시적 화자는 이어지는 행에서도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행위로 인해 눈 내리는 날이 마냥 즐겁다고 한다. 시 전체에 흐르는 시상이 따뜻하게 전개됨으로써 독자들은 바쁜 일상을 잊고 눈 내리는 날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함께하다 보면 “눈이 내릴 동안‘ ’누군가를 업고 싶다‘고 한 시적 화자의 바람이 자신의 바람으로 연결된다.

김시인은 언젠가 시집 자서에서 시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고 선서를 한 적이 있다. 그의 시「눈」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고 누군가를 업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인다. ‘가볍다’, ‘포근하다’, ‘즐겁다’라는 형용사들이 마지막에 ‘업다’는 동사로 귀결됨으로써 긍정의 수동적 이미지가 역동적인 섬김의 이미지로 완결된다. 따라서 독자는 좋은 시 한 편으로 인해 즐겁고 정직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 비록 힘든 나날일지라도 서로를 업고 있는 눈처럼 우리도 서로 언 손꼭 붙들고 따뜻하게 녹이며 나아가 보자.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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