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식 목사.

금년도는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는 해이다. 영미교회들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정치와 경제에 관심을 갖고 교회를 세속화시키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역시 권력과 밀착되어 많은 이권을 챙겼으며, 하나님나라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라고 부르짖으면서 쇄락의 길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미천하고,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한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영미선교사들의 영향을 받고, 서양문화로 대변되는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가 타락한 영미교회의 전철을 밟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을 자를 택하셨다. 그리고 유력하다는 자들을 무력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서 천한 자들과 명시당하는 자들과 존재 없는 자들을 택하셨다…(고린도전서 1장27-28절)”고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의 체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성경구절은 역사의 주인공이 어리석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존재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벌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영미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성서의 정신으로 돌아가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동안 쌓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100년 만에 1천만명이 넘는 교인을 만들었다.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였다. 이제 한국교회도 영미교회와 마찬가지로 200여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가진 자들의 기득권에 눌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신, 떠돌이, 노동자, 농민 등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향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를 좌지우지 하며,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대다수는 역대정권과 타협하며, 그 비호아래 성장해 왔다. 이른바 근대화라는 바람에 휘말려 본향을 잃은 수많은 피난민, 이농인구들이 다급하게 찾아간 곳이 교회이다. 이들은 교회성장의 주체였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저들에게 걷은 헌금을 가지고, 수십억, 아니 수백억, 수천억원짜리 교회당을 짓고 버스를 사들여 교인쟁탈전을 벌였다. 우스운 것은 이것이 응분의 권리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결과 때문이다.

기독교는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것은 교회성장의 주체였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교회는 민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정교분리원칙을 내세워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막았으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비호하는데 앞장섰다. 그것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는데도, 국민들의 절규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권력을 비호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선교초기 모여들었던 피압박민족, 3.1만세운동 당시 총동원되어 외쳤던 그 과제에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뿌리인 예수님과 그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님만을 고수하던 이스라엘 신앙에로의 회귀의 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무게의 중심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 놓아야 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기득권을 가진 주류에 저항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보수성은 주류에 가담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주류가 내세우는 교리는 싸움에서의 승리로 얻은 권력이지, 그것이 진리는 아니다. 소위 오늘 한국교회가 정통을 운위하는 것은 주류에 충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예언자 전통, 예수님 전통의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기하성(순복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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