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3일 밤낮을 달려 하노이까지 가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 평양으로 갔다. 이것을 보면 정말 김정은이 이번 하노이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협상이 있기 전 미국에서 필자가 아는 분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했다. 한국과 북한이 트럼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가 싱가포르에서 빈손으로 왔을 때, 트럼프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자칭 협상의 달인이라는 사람이 그 큰 이벤트를 만들어 놓고 또 김정은에게 한 보따리 선물을 안겨주고, 자기는 빈손으로 돌아가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태연한 그를 두고 한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정치인과 그 틀에서 그를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이었다. 지난 선거에서도 공화당조차 등을 돌린 후보임에도 기적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그의 협상 기술이 선거에서도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가 그 엄청남 비난을 감수하고 싱가포르 회담의 과실을 김정은에게 넘겨주었다. 만일 김정은이 정말 현명했다면 이번 하노이에 이미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영변 하나를 달랑 들고 오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의 빈손을 본 트럼프는 북한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볼턴을 내세어 김정은을 간단하게 돌려세웠다. 김정은의 당황함은 보지 않아도 선명하다. 김정은의 빠른 두뇌가 싱가포르의 트럼프 정도라면 충분히 요리하고, 북한 인민으로부터 불세출의 명장이요 동시에 세계 외교의 대 전략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만함이요 미숙함이며 그의 천박한 영웅주의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김정은보다는 차원이 다른 협상술과 옵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해서 필자가 트럼프 지지자이거나 우호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의 전반적인 정치와 정책이 미국답지 않고, 소인배적인 장사꾼의 수준임을 어찌하랴! 그런 천박한 그이지만 그의 이리같고 여우같은 기질이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우리의 멱살을 잡고,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다. 그런 그를 상대하고 이기려면 그보다 더 지혜로와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국을 혈맹의 우방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동시에 중국을 적대적으로 대해서도 안된다. 더불어 북한을 우리가 껴안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아서도 안된다. 이미 북한은 우리의 모든 전력을 한 순간에 무력화시킬 핵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최첨단 재래식 무기라도 핵이라고 하는 전력 앞에서는 한갓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이 핵의 사용은 남북이 모두 공멸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군사적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말이다. 즉 남북은 군사력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정은에게 무엇인가 줌으로써 그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를 좀 더 국제화시키고 현실화시켜야 한다. 미국의 정보력이 이미 북한 전역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음과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까지도 이미 파악된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영변 하나로는 협상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트럼프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볼턴의 입을 빌린 트럼프는 점점 더 강경해질 것이다. 과연 이것을 김정은이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손바닥에 불과한 영변으로는 트럼프의 전방위적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을 인식하도록 정부는 대북 정보력과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북한 내의 인사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김정은에게 하지 못한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문재인 대통령이다. 진정으로 미국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협상하라. 그래야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화려한 귀국 퍼레이드는 펼치지 못했지만 북한의 내일과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북한 인민을 위하여 손바닥이 아닌 온몸으로 나서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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