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잉글랜드에서는 1536년과 1549년에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잔인한 보복이 가해졌다. 1535년에는 독일 뮌스터에서 재세례파가 멸절을 당했다. 노르웨이, 스웨덴, 네델란드, 폴란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보헤미안 개신교들이 가장 무서운 박해를 받았다. 이런 치열한 대립과 혼란들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이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보내신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특히 칼빈은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 한 치의 실패도 없는 치밀한 섭리에 대해 강조하므로서 많은 사람을 설득하였고 걱정과 염려에 잠긴 자들에게 좋은 해답을 주었다.

3. 고난과 인내 속에서 빚어진 칼빈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의 첫 출발과 진행과정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루터의 삭소니 지방이나 츠빙글리의 쮜리히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제네바 시가 주변의 지역과 함께 독립을 쟁취하자마다, 먼저 파렐이 시의회를 설득하여 주교가 통치하던 정치구조를 완전히 종교개혁 진영으로 돌아서게 하였다. 그 후에 칼빈이 들어와서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변화시켜서 개혁주의 신앙을 근간으로 하는 교회 중심의 도시로 전환시키는데 환난과 고난과 인내가 필요하였다.

현재의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환난들을 당하면서 고생하는 성도들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환난 중에서도 성도는 인내하면서 즐거워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고난이 주어지는 것인가?

1) 성령께서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신다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트라스부르그에 피신하여 살고 있었던 칼빈은 환난과 인내를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칼빈은 1539년에 펴낸 로마서 5장 3-4절의 주석에서, 성도들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환란과 인내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환난은 경건한 자들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한층 더 촉진시킨다.” 특히, 성도들은 괴로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고통을 피하려하는 것이 아니며, 인내의 과정이 필요 없다고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극히 온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환난들을 주시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도 큰 위로를 얻는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환난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침을 얻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환난들을 통해서 인내를 익히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환난들이 그러한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인내로써 환난들을 감당함으로써 자신의 소망에 자양분을 더해 주시고 확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끼는 사람 외에는 믿는 자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환난이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내를 배우지 못한 자들이 구원을 이루기는 어렵다.
이어서 칼빈은 고린도후서 4장 8-9절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당하여도 버린 바 되지 아니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 망하지 않는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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