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동서 갈등과 지역 갈등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는 역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당 정치의 당리당략과 정치인 개개인의 정치 생명의 장수를 위한 이기적인 울타리로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 유권자들을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목마름을 해갈 할 수 있는 저수지처럼 묵어두기 위해 지역 정서와 지역 이기적인 사고들을 부추겨 상대 당을 공략할 수 있는 실탄 보급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이용하는 젖줄로 삼았다.

이는 역사적으로 일본 제국 식민주의 잔재와 육이오 한국전쟁의 악몽과 개발독재의 유령의 그림자가 4,19와 5,18을 낳았으며, 그로인한 지역 갈등은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는 지역 정서와 뿌리 깊은 감정의 골로 자리했다. 39년 만에 재론하기 시작한 5,18 피해자들과 가해자간의 이해 충돌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는 원인도 또한 같은 이치다. 잊을 만하면 피해자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소리를 통해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것도 지역 갈등 또는 이념 갈등과 무관치 않다. 다시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들의 원성이 끊이질 않고 한 사건을 두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 차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지역의 갈등과 사상 갈등이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서갈등과 지역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게 파이고 있는 현실을 그동안 이를 보고 있는 지역 속의 종교 세력들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방관만 하고 있지 않았는지 자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여론을 부추기며 더 깊은 골을 만드는데 일조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한다. 종교란? 특히 기독교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혹시 내 지역의 이웃만 사랑하고 타 지역의 이웃은 이방인으로 몰아 부치지 않았는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더 지역 갈등의 조장에 앞장서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왜 지금까지 동서 화합을 위해 동서간의 갈등 봉합을 위해 양 지역 기독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은 무슨 노력을 했을까? 교회옥상에 높게 메어 단 십자가, 하늘을 향해 세상을 향해 십자가를 지겠노라고 약속한 붉은 불빛의 네온 십자가가 수 없이 많은데도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지역 속에 있는 교회는 내지역의 영혼들만 불쌍하고 타 지역의 영혼들에게는 관심도 없는지 의문이다. 교회는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다. 인간의 교묘한 계략에 의해 내 지역 내에 있는 그것도 내 교회의 영혼만 사랑하면 그만이지 멀리 있는 타 지역의 영혼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가졌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은총에 대한 배신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기독교는 인류 가치에 무의미한 존재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내 지역 뿐 아니라 타 지역, 동서간의 지역 편 가르기보다는 화합을 위해 먼저 기도하며 실제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는 해외 선교를 등한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먼저 대한민국 내의 동서화합을 위해 교회 자원을 활용함이 옳은 일이다. 대한민국의 성도들은 동서 분리를 분명 원하지 않는 줄로 믿는다. 사회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전략으로 태어난 지역갈등, 동서 갈등을 이제부터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하도록 동서 지역의 교회들이 나서면 안 되는지? 만약 교회도 사회 정치 세력이나 시민단체와 같이 동서를 분리하는 일을 당연시 하거나 아니면 한수 더 떠서 분리를 조장하는 발언이나 시위를 한다면 이는 기독교 정신의 이탈로 치부될 수 있다.

이미 지난 시간이지만 삼일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 서 교회가 함께 한날한시에 1919,3,1.만세 사건을 재현했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각 소재지 교회나 아니면 지역의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동 서 교회의 신자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고 외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만세운동 재현을 통해 정치적으로 갈라진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일에 교회가 나섰으면 하는 희망이었다. 올해 못하였으면 내년으로 다시 한 번 기획해 볼 일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므로 서로 믿고 하나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묵은 동서 지역감정은 정치적인 소산이지만 정치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이제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는 대승적 차원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지난 시대의 원한과 감정을 해소하고 교회를 통해 사회에 밝은 빛을 비춰야 한다. 얼었던 감정을 녹여 기독교 특유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일에 교회가 나설 때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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