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동 규 목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지혜와 재물, 그리고 지식을 자랑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슬릴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려움에 닥치게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고, 한분 예수님만을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종교지도자들과 위선적인 행동을, 하나는 바리새파들을 예로 들며, 제자들에게 교훈 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장 1-12절)

그렇다. 종교지도자,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지혜를 내세워 전문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혜를 식별하고, 이를 마음에 담아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참된 구원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이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 길은 고난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주님 곁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우리는 이 길을 멀리하며,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위선적인 사람들을 많이 본다. 우리는 이들을 향해 잘났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미래를 볼 수 없다.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면 속에 살고 있다.

유대인들의 삶은 지혜가 매우 중요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떠돌이 유랑민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1948년 해방될 때까지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이들은 어디에서도 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업에 집중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였다는 이유로 떼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율법의 아버지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우리나라나, 중국과 같이 유교를 숭상했다면, 육신의 아버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요즘 목회자들은 교회를 빨리 부흥시키려고 하다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천천히 가라고 했다. 요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가 보니 많은 시행착오가 생기고 있다. 통일의 길은 천천히 가야 한다. 독일통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가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사랑과 믿음을 말하면서, 평화를 말하면서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우리는 원리주의, 근본주의에 갇혀 북한을 적으로 삼았다. 그것은 남과 북이 하나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세속에 갇혀 구원의 빛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을 십자가 밑에 불러 모아야 한다. 그리고 구원의 빛을 모아 기도해야 한다.

예장 개혁선교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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