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靑

여름은
내 곁에
아직 무성茂盛히 있네

깊숙한 골짜기에서
한잠 자고
이내를 건너

더러는
빠뜨리고 더러는
또 손에도 들었네.

*한분순 : 서울신문 신춘문예 <옥저>로 등단(1970)
한국시조작품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정운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및 시조분과 회장

▲ 정 재 영 장로
트위터나 카톡 등처럼 SNS에서 짧은 글로 소통하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응축이나 함축의 형식을 빌은 짧은 시는 문학의 활성화를 증진시켜줄 수 있는 순기능을 기대하게 한다.

작품 안에서 화자가 말하는 시제(時制)는 젊은 시절을 의미하는 푸른 여름이 다. 최소한 가을이 오지 않은 늦여름쯤이다. 여름이 상징하는 것은 열정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일들이다. 늦여름은 아직은 설익었지만, 열매로 금방 익어 가을을 준비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즉 변환점이다.

제목 <청>의 절기, 시각적 언어가 은유하고 있는 푸른 여름이란 봄의 미성숙의 열정과 가을의 성숙의 중간단계로, 사람에게 비유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한참 활동하는 시기다.

첫연의 화자 페르소나는 여전히 젊음이다. 그러나 그 열정에만 심취했던 것을 스스로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이유는 2연에서 잠을 자다가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그런 푸른 삶을 살아낸 시점에서 스스로 살펴보니, 어떤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어떤 것은 소멸되었다는 것을 마지막 연에서 진술해준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후회하지 않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 해석의 단초는 첫연으로 돌아가 보면 쉽게 추론하게 된다.

여기서 푸름이란 꼭 열매 이전의 미성숙을 지시한다고 한정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푸름은 가을에도 필요한 특이성을 가졌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세월로도 변하지 않는 여름날의 순수한 열정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청이란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과 그것을 추진하는 속성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절약한 언어이지만, 오히려 상상의 영역 범주가 확장되는 것을 보면, 시에서 응축의 중요성을 재확인해준다. 단순미학의 경향을 가진 현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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