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주일 전날인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교계가 준비한 성대한 부활절연합예배에 파묻혀 철저히 소외된 느낌마저 든다.

우리나라가 ‘장애인의 날’을 제정한 목적은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격차를 없애는 인식과 제도 변화를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유엔의 권고사항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격은 마치 과거 봉건주의 시대 신분 계급사회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식 때문이다.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게 장애인이 되었으며, 그 대상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도 나는 비장애인이 아닌 정상인이라는 차별적 인식이 여전하다.

그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병적으로 심했다. 신체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한자어 병신(病身)이란 단어가 욕설로 사용되는 것에서 보듯이 장애인을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장님, 소경, 청각장애인은 귀머거리, 벙어리 등으로 불리었다. 과거 성서공회가 번역 출판한 개역성경에서조차 귀머거리, 절름발이, 소경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기되다 보니 아직도 교회 강단에서 이런 낯 뜨거운 용어를 버젓이 내뱉는 목회자들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사회는 인권을 더욱 강조하는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인권은 제자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포용적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아동수당 전격 도입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인권을 표방하는 현 정부의 복지국가 계획에 장애인은 없다며 반발해 왔다. 심지어 동성애자들에게 까지 날개를 달아주려 하는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정책 실현이 아닌 감성적인 구호로 접근하려는 데서 매우 큰 실망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을 향해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우리에게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 혹은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순간 서로 간에 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애인을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범주가 아닌 그냥 나와 똑같은 인격체로 대해 달라는 것이다.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라면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립해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체계를 마련하는데 최우선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되 장애인에게 당연하지 않은 환경, 당면한 불편함에 대해 살피고 문제의식을 갖는 자세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부활절인 지난 21일 주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에 있는 서울맹학교 강당에서 한국기독교 시각장애인연합회가 주관한 부활절연합예배가 있었다. 한국교회 주요 연합기관들이 대규모 연합예배로 세를 과시하는 동안 같은 시간에 맹학교 강당을 가득 매운 시각장애인들은 교계 언론사와 방송사들 모두가 외면한 그들만의 조촐한 예배로 주님의 부활을 축하했다. 이 예배에서 축사를 전한 김효종 목사는 한교연을 대표해 부활절새벽연합예배 헌금 일부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금으로 전달하고 축사를 전한 후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김 목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장애인은 이분들이 아닌 나를 포함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일 것”이란 말로 기독교계의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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