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분단의 민족이 하나 되는 ‘구원의 날’을 대망한다”6.25한국전쟁 69년, 분단 74년에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 한 번 소망한다(1)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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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10: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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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도 69년이 됐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 화해의 길은 멀고 험하다. 6.25 한국전쟁 69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에 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분단을 넘어서는 평화의 기도

“… 당신의 평화를 이 땅에 강물처럼 끌어들이며/민족들의 평화를 개울물처럼 쏟아져 들이는 일을 이 민족에게 허락 하소서/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말들을 분별케 하는 성령을 우리에게 허락 하소서/하나님. 우리는/이 땅에서 힘 있는 자들이 당신 앞에서 무서워 떠는 날을 대망 합니다/이 땅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이 당신 앞에서 기억되는 날을 대망 합니다/…(중략)…/분단의 민족이 하나 되는 구원의 날을 대망 합니다. 백두산과 한라산이 하나 되고 이 땅의 산들과 언덕들과 바다들이 우리 앞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들이 손뼉을 치며, 당신의 나라를 찬양하는 날을 대망 합니다…”

이 기도는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가 기독교선교 100주년을 맞아 드린 <기독교 100주년에 드리는 여성의 기도문> 중 일부이다. 분단을 넘어서 평화를 간구하는 기도라는데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 기도문은 분단 74년, 한국전쟁 69년을 맞은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한국기독여성들의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향한 간구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분단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드려야 온 기도이며, 앞으로도 드려야 할 간구의 기도이다. 또 24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모두의 염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 성직자와 교인들은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갇혀,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말하기보다도 로마의 평화(팍스)를 말하며, 이념 간의 갈등, 남북한 민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데 중심에 서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권력을 등에 업고 기득권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자세가 전혀 되어있지를 않다. 한국교회는 맘몬이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 민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민족 간에 화해하라는 성서의 진리에서 이탈해, 로마평화(팍스), 힘에 의한 평화를 간구한다. 한마디로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는데 한국교회가 앞장서고 있다는 말이다. 어느 목사는 “남북한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 2000만명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이 말로 이 목사는 구설수에 올랐다. 성직자의 말, 아니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의 화해의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보수적인 성직자들의 입에서는 노골적으로 동서간의 갈등을 조장한다. 전라남북도의 분리를 노골적으로 말하는 목사도 있다. 또 전라도를 ‘전라민국’이라고 말하는 목사도 있다. 이 목사들 교회 안에도 전라도 교인이 엄연히 존재한다.

전라도 교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목사의 잘못된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것이 바로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갇힌 한국교회이며, 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국민 대부분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남북한의 분열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 의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장로교회에 의해서, 성경과 공과가 분열되는 아픔을 경험했다.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 화해자의 역할을 …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서 해방돼 한반도의 평화에 봉사하자

고난당하는 이웃을 몰각한 교회

영미의 교파주의가 이 땅에 그대로 뿌리내린 한국개신교는 해방이후 연쇄적인 분열이 일어났다. 한국개신교는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남북한 민족의 분열, 이념간의 분열, 동서의 분열, 계층 간의 분열, 세대 간 분열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해방을 앞두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갈라져 싸움을 벌일 때, 민족주의 편에서 활동하며, 사회주의자들을 적대시 했다.

또한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좌우의 화해를 위해 봉사한 지식인들을 사회주의자로 매도하며, 한민족의 분열을 부추기는데 앞장섰다.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김규식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을 매도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에서 지식인 독립운동가들은 교회를 떠났다. 그러면서 친일세력과 합작된 독재정권과 군사독재정권의 최대 협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권력의 주변서 온갖 혜택을 누렸다는 애기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한민족분열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주의는 주님의 영을 거부한 결과이다. 남북한의 분열은 불의한 자들의 계략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극임에 틀림없다. 한국교회 성직자와 교인들은 분열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보다도 크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성직자와 교인들은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갇혀 있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일부 성직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잘못된 권력의 ‘피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해 줄줄은 알아도,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인색하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있었다. 이웃에 대한 인정이 메말라 버렸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권력의 주변서 온갖 혜택을 누려온 결과이다. 일본식민지시대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조선의 식민지를 정당화 해 주었다.

반면 다수의 선교사들은 한민족의 의식화교육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지식인들을 추방했다. 이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이탈해, 1920년 조선공산당 창당과 함께 사회주의 진영으로 들어갔으며, 그리스도인들의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 미약했다. 또한 1920년 신사가 남산에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여기에 침묵했다. 한반도의 분열은 1920년 조선공산당 창당과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정책에 의해 미미 예견됐다.

이 같은 정교분리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오늘 기독교정당의 출현에, 왜 목사들이 정치에 관여 하냐고 비판하는 이유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교분리에 매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에 침묵했다. 오히려 동조했다. 2018년 제주도의 교회들이 한국대학생선교회와 함께 제주 4.3사건에 대해 침묵했던 잘못을 오늘에 와서 회개하며,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가진 이유도, 당시 잘못에 대해 참회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6.25 한국전쟁 북한에서 남한으로 밀고 내려온 김일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DNA를 물려받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독재정권 아래서 ‘피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해 주며, 자신의 양심과 사회적 양심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민주화와 통일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에 앞장 선 고난당하는 이웃을 몰각했다. 예언자의 사명을 망각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교회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한반도의 평화, 한민족의 화해에 봉사

이렇게 길들여진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봉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교회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들은 이러한 교회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혼자 가겠다고 소모적인 경쟁을 벌인다. 분단된 조국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는 하지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는 한국교회를 향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외친다.

하나님나라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 민족, 아니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갇혀 하나님나라에 혼자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데 한국교회가 중심에 서 있다. 그러면서도 매 예배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린다. 한마디로 행동 없이 허공을 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분열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정치적, 이념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이야기 하는 모든 국민들은 통일이 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해답을 얻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화통일의 문제는 정부의 점유물로 국민들은 논의조차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숨어서 평화통일의 대열에 참여했다가 이적행위로 고문을 당하며, 감옥에 갔다. 한국교회는 이를 비판하며, 이들을 향해 ‘간첩’, ‘빨갱이’, ‘공산주의자’ 등 비난하기에 바빴다.

분명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남한의 사드배치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남북한민족의 소모적인 논쟁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담보할 수 없다. 주변의 강대국들은 이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일본의 아베정권을 보라, 중궁의 패권주의를 보라! 지금 세계는 인류를 200번 진멸할 수 있는 가공할만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인류의 평화를 파괴하면서 평화를 내세우는 세계의 패권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한마디로 거짓 평화이다. 즉 힘에 의한 로마평화(팍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평화와 화해를 노래해야 한다. 위 기도문은 참된 평화는 무기에 의해 보장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파괴해 버릴 것을 성서에서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노래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평화를 노래하는 교회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하면서, 우리는 평화 없는 민족과 세계를 직시하고, 증언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핵무기 아래 있다. 평화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없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으면서 평화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말 할 수 없다. 전쟁과 내전을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민족이 있는 한 평화의 시대는 없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화서 화해는 없다. 먹을 것이 없어 매년 8000만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오늘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평화는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릴 때 찾아온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기도문이 담고 있는 것처럼 민족 분단과 군사적 대립관계를 방치하면서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 예배 기도와 골방기도에서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며, 허공을 친다. 이런 기도는 헛소리요 거짓말이다. 행동하지 않는 기도이다. 한국교회의 침묵은 비성서적이며, 반 그리스도적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한국에 있어서 그 곳은 어디인가?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평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위 기도문 속에는 민족들과 인종들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사회에서의 빈부의 차별,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한 관계, 종교 간의 분쟁이 계속되는 한 평화가 없다는 것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제 세계상황에 휘말려 든 교회는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자유와 하나님의 평화에 참여 할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평화(샬롬)의 의미는 창조자 축복 아래서 자연과 화합하는 삶, 사회에서의 번영을 향유하는 삶을 의미한다.

세계 패권자들이 과학기술과 결탁, 핵무기를 계속해서 생산하면서 창조자 하나님의 축복, 특히 세계의 가난한 민족의 삶을 박탈하는 일을 자행하면서,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죄악이며, 범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역사적, 민족적 상황을 인식하고, 참된 평화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 없는 세계와 분단된 조국의 한복판에서 증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평화의 길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오랜 식민통치와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70년 만에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런 사례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들이 전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룬 한국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경제발전과 민주화, 정부 개혁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되는 해다. 해마다 6.25전쟁 기념일이 되면 대형 교회 등 여러 기관 단체들이 보은 차원에서 6.25참전 용사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갖는다. 20대의 꽃다운 청년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은 이제는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지팡이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폐허 속에서 기적을 이룬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 속에는 UN의 결의로 우방인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그 희생의 결과 오늘의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긍심과 부러움이 함께 묻어있다. 그들은 다시 찾은 이 땅에 와서 한 결 같이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평화의 지대로 바뀌는 DMZ를 보고, 평화를 향한 열정에 애쓰는 남북한 당국자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나 한민족이 평화를 향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특히 힘에 의한 평화, 로마평화(팍스)를 외치며, 경제적 성장만(맘몬)을 외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이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져 가진 것을 내려놓지를 못하고,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 보다 크게 느끼고 있는 결과이다. 그러면서 성직자들은 국민상호간에 불신풍조를 조장하고, 자신의 뜻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양심의 소리를 봉쇄해 왔고, 봉쇄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의 길에서 유리되어 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여기에다 일부 교회의 성직자는 주일 대예배에서 ‘전라민국’, 또는 전라남북도 분리설를 제기하며,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양심은 물론, 사회의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은 통일운동을 정권의 전유물로 여겨 왔으며, 국민들의 통일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해 왔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권력의 주변서 이를 철저하게 지켰다. 오늘 한국교회 성직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보적인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과 성향이 다른 사람을 ‘좌파’로 매도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트럼프를 연호하는 사람은 애국자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한 사람들은 비애국자로 매도한다. 심지어 태극기 집회에 일장기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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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
요즘 한국기독교총연합의 세상 정치를 향한 접근방식이 너무나 무섭고 우려됩니다.
(2019-06-06 11:03:38)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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