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후 온통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전 목사의 대통령 하야 주장에 대해 언론들은 한기총 뿐 아니라 보수 기독교에 대해서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한기총 내부에서는 언제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이다. 사실 교계 안팎에서는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되었던 일이다. 주변 사람들조차 그가 한기총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보다는 기독교 연합기관의 조직과 인력을 활용해 내년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의 현실 정치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더 큰 꿈이 있음을 공공연히 말해 왔었다.

그런 점에서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 이름으로 현직 대통령의 연말 하야를 주장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 목사는 이미 여러 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시국집회를 주도해 왔고, 대표회장 취임석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간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발언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기총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에게 장관직을 제안했다는 말이 일부 언론에 기사화되며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 인사들 중에는 그가 좀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내뱉기는 하나 못할 말을 한 게 아니지 않느냐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문제에 있어 비핵화는 강하게 요구하지 못하면서 통일 외교 안보에서 북한에 휘둘리고 있으며, 경제 위기가 현실로 닥치는 마당에 국민들의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전 목사가 에둘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현 정부에 문제가 있고 불만이 있어도 기독교 지도자라면 말을 가려해야 한다. 대통령을 향해 “그런 식으로 하려면 때려치우라”고 하는 말은 개인이 홧김에 내뱉는 말이라면 모를까 공적인 신분의 목사가, 공식적인 문서에서 대놓고 할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범죄한 사실로 인해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면 모를까 정치적 성향이 맘에 안 든다고 무조건 하야하라고 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로 봐도 무책임한 선동으로 비칠 수 있다.

전광훈 목사는 일개 개인, 자연인 신분이 아니다. 본인은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발표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한기총 대표회장이라는 이름을 거론했을 때는 최소한 그에 걸맞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한기총은 비록 지금은 주요 교단들이 떠난 군소교단 집합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나 한때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기관의 대표가 스스로 그 위상을 허물고 세인들에게 함부로 짓밟히게 해서야 되겠는가.

한국교회가 신학적인 견해 차이로 보수, 진보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서서 다른 길을 갈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교회가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더구나 지극히 편향적인 자세로 현실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 정치적 손익계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삼가야 할 일이다.

과거 보수 정권 하에서도 진보적인 기독교기관과 일부 목사들이 대통령을 항해 물러나라고 했으니 전 목사가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과거에 나와 다른 주장에 대해 비판하다가 지금에 와서 과거에도 그랬으니 지금 내가 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오류이며 자가당착이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숱한 믿음의 사람들이 정치를 할 줄 몰라서, 또는 무기로 대응하지 못해서 순교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 외에 그 어떤 다른 이유와 설명이 필요한지 스스로 자문자답해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