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순임 목사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벌써 69주년을 맞았다. 한민족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시리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 여전히 가슴을 후빈다. 시대는 2000년대를 훌쩍 넘어 2019년인데, 1950년에서 시계가 멈춰버린 우리 민족의 상처가 덧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온전한 안전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우리가 가슴 속에 새겨야할 고마운 분들이 있다. 바로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터로 향한 2400여명의 여성의용군들이다. 흔히 6.25전쟁하면 남자들만 총칼을 들고 전장에 나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포화 속에서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나라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나라의 안녕을 위해 전장에 뛰어 들었다. 실제로 1950년 9월 6일 여성의용군이 창설됐을 때 여군 500명 모집에 무려 2,000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이들의 애국정신은 남달랐다.

모 신문에 보도된 한 여성의용군의 말처럼, 임진왜란 때 여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일본군과 싸웠듯이 가만히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고 외친 것처럼, 여성이 아닌 한 나라의 민으로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온갖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투지와 숭고한 애국정신 하나만 부여잡고 버텼다. 펑퍼짐한 남자 군복이나 미군 군복을 입었으며, 남자군인들이 쓰고 남은 군화를 신었다. 잠을 잘 숙소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1953년 휴전 선언 전까지 많은 족적을 남겼다. 1.4 후퇴 당시 신분 위장 중에 있다가 유격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비롯한 주요 거점에서 대적•대민 선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군 약 1200명을 귀순시키는 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그들의 용기와 나라사랑 정신에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 6.25전쟁 69주년을 앞두고,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전쟁터로 발길을 옮긴 민족의 어머니의 애국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있지 않다. 3.1운동 당시 일제의 총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민족의 어머니처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나라의 안위를 위해 헌신했던 민족의 어머니처럼 이제 대한민국 여성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나약하거나, 무관심으로 응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로 임해야 한다.

작금의 경제, 사회, 남북관계, 대외관계 등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순국선열들이 피땀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 여성들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한국교회 여성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분단의 현장에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 화해의 노랫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전력을 쏟아야 한다. 두 번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 위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6.25전쟁 때 여성의용군처럼 ‘당당히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  

예장 열린총회 초대총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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