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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법정인 양심, 이성과 합리성을 담보해야 한다”7월 법의 달 특집…한국교회 성직자와 교인들의 양심을 점검한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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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2  09: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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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법의 달이다. 양심이 마비되어가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법정’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을 보면, 양심을 가지고, 교회의 문제를 처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성과 합리성에서 이탈했다. 성직자와 교인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교회의 역사를 왜곡하며, 반 평화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관념을 내세워 지역감정도 부추긴다. 이로 인해 오늘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세상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자리는 ‘돈’으로 대치되었었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다. 돈이 있어야 세습도 하고, 교단장 및 단체장도 된다. 장로, 안수집사도 된다. 또 돈 때문에 다툼도 일어나고, 분열된다. 믿음과 신앙으로 결정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돈이 있어야 행세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양심, 나에게 물어보라

오늘 윤리적, 도덕적, 법적으로 이탈한 사람들을 향해 흔히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시오”라고 조크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부정선거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구속됐다. 이들은 구속되기 전, 양심선언을 통해 불의한 정권의 부정선거를 폭로했다. 이들의 양심선언은 폭력적인 고문과 법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들의 양심선언은 양심에 상반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며, 본의 아닌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공정한 법집행을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의 판단에 호소한 것이다. 당시의 현실은 폭력(법질서)과 양심 간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속되기 전 양심선언으로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자신이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었다.

이렇듯 양심은 자명하다. 그러면서도 그것처럼 정의하기 힘든 것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도덕적, 윤리적, 법적으로 이탈했을 경우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은 양심의 자명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양심적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전혀 그렇지 않을 때, “양심이 이란 것이 있는가?”를 자신에게 자문하며, 회의를 느낀다. 특히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해, ‘양심’이란 단어를 자주 던지며,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것은 군사독재정권을 비롯한 잘못된 정권의 가장 협력자였던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부끄러운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에 갇혀, 기독교의 가치인 사랑과 용서, 평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현하는데서 이탈했다. 요즘 언론에 하루가 멀다고 비쳐지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의 이탈행위는 이를 대변해 주고도 남는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양심이 마비된 인간’이란 별칭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양심이 마비되었는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왜 오늘 성직자와 교인들은 이 같은 질문을 받아야 되고, 해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마디로 참담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이 성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에서 이탈해, 맘몬과 바벨을 숭상하며, 이단 및 사이비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 각종 언론에 비쳐진 교회의 성직자들의 형태를 보면,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양심이 마비되었다”고 말을 하고도 남을 만 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범죄자
교회의 지도급 인사인 성직자와 장로 개인의 욕망에 갇혀 마음의 법정인 양심 마비

양심 드러낼 수 있는 신앙 필요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담임목사직 세습과 당회장 목사의 계산 안되는 비자금 형성, 인천 어느 교회 부목사의 청소년을 상대로 한 그루밍 사건, 강남 어느 교회의 400개가 넘는 통장보유 보도, 각 교단의 지도자가 개 교회 사건에 개입해 이권을 챙긴 사건, 어느 교회 담임목사의 여성 교인 여러 명과 등거리 부적절한 관계 유지, 어느 목사의 시설에 맡긴 아이가 죽었다고 15년 동안 숨겨온 사건 등등은 오늘 한국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에다 어느 연합단체의 기관장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왜곡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겨 언론의 몰매를 맞았다. 또한 이 단체장은 임원회의에서 자신을 의장이라고 부르는 회원들을 향해 ‘OO끼’, 종로5가를 다니는 목회자와 장로들을 향해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 단체장의 말대로라면,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장로, 그리고 교인들은 양심이 마비된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이 단체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말이 목회자와 국민, 교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이다. 과연 종로5가는 범죄자들의 소굴로 변질되고 있는 것인가. 종로5가는 기독교의 메카이며, 성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종로5가는 선교의 전초기지였으며, 3.1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해방과 6.25 한국전쟁 후에는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운동의 중심이었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다. 한국적 신학인 민중신학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종로5가가 변질되었다는데 안타깝다. 오죽하면 교인들을 향해 종로5가를 피해 다니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종로5가는 더 이상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아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명동성당으로 옮겨갔다가, 여기에서도 외면당해 조계종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조계종에서도 이들은 버림을 받았다. 한마디로 한국의 종교단체가 권력의 시녀가 된 나머지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피난처는 더 이상 없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아우성친다.

맘몬과 바벨을 사랑하는 종교는 더 이상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니다.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며, ‘로마평화’(팍스)를 외친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한다. 치열한 종교의 모습만 보인다. 종교적 양심, 성직자의 양심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종교가 원래 종교의 가치와 본질에서 이탈해, 맘몬만을 숭상한다. 원종교의 뿌리를 상실했다. ‘신’을 맘몬으로 대치한 결과 곳곳에서 ‘돈’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난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성서에서의 이탈로 인해 교회 내 다툼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천의 어느 교회는 목회자의 신비적이며, 성서에서 이탈한 설교로 인해, 목회자가 이단에 휘말렸으며, 목사와 지방회, 총회는 문제를 제기한 장로와 교인들을 면직처리 해 교회내분이 사회법정으로 확산됐다. 무엇보다도 교단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도, 목사와 소수의 교인들의 편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 교회 내분을 더 키웠다.

이런 교회는 비단 이천의 S교회뿐만 아니라, 통합측의 강남S교회, H교회, 가평의 G교회, 합동의 S교회, 송파의 M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대부분의 교회는 다수가 속한 교인측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담임목사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교회수습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들 교회 대부분은, 교회 내 내분을 총회 재판국과 노회(지방회) 맡겨 처리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교회수습에 나선 위원들이 학연과 돈에 연루돼, 다수 교인의 아우성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교인들은 사회법정을 신뢰하고, 법원에 불법성을 가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의 재정 상당수가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 교인들은 소송비용을 마련하지 위해 집을 저당 잡혀 빚을 내야 하는 형편에 놓이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지도자들의 양심마비로 인해 교인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지도급 인사인 성직자와 장로들이, 다수의 교인들을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어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해 국민들이 던지는 말은 ‘양심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오늘 성직자 중에는 교회의 재산을 독식하기 위해 교인들을 몰아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런 상황서 성직자에게 “양심이 있느냐”는 질문은 당연하다.

120년 된 남양주시의 한 교회의 목회자는 120여명이상의 교인들을 모두 몰아내고, 재개발로 보상받은 보상금을 마음대로 사용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 교회의 사건은 분쟁에 휘말린 교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명이상 모이던 은평구에 위치한 어느 교회는 교인 대부분이 목사에게 반기를 들고 떠났다. 현재는 30여명만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교회의 나이든 원로장로는 “목사가 교회를 팔아 혼자 독식 할 것을 염려해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지도자들은 성서에서 이탈해, 양심을 마비시키면서까지 한국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따라서 교인들은 양심이 마비된 성직자의 내면을 들여다가 보면서, 교회를 떠났고, 떠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1200만명의 교인이 아니다. 1000만명, 800만명, 5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것마저도 허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모 일간지의 통계만 보고, 모든 종교 중 기독교의 교인 수가 가장 많다고 자랑한다.

한국교회를 떠난 교인의 상당수는 천주교로 이적해 갔다. 또 나머지는 가나안 교인이다. 요즘 대형교회 몇몇을 제외하고는 교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결과이다. 70-80년대 십자가만 세우면, 교인이 몰려온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교회는 일부 성직자와 교인들의 양심적 이탈로 인해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양심은 마음의 법정

요즘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서의 법정신인 구약의 ‘예언자 전통’과 신약의 예수님 법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신구약성서의 법정신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창녀, 문둥병자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진 나머지 이들을 위한 교회에서 이탈했다.

한국교회가 신구약성서의 법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네 팽개쳐 버린 마음의 법정인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칸트는 “인간 안의 내적 재판정의 의식이 양심이다”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인간 자체에 선악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동시에 그것을 판정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칸트는 양심은 인간 자신의 자아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본질로 봤다. 한마디로 양심률은 저 하늘의 별처럼 인간 안에 실제 한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시대에 와서 양심을 이성의 대명사로 보았다. 곧 양심적이란 것은 이성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즉 양심으로 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이미 주어진 어떤 자명성을 전제로 한다. 이 자명성은 사회과학시대에 들어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이성이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프로이드는 양심을 가치관과 문화적 전통이 이룩한 상황에 관심을 뒀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서 읽을 수 있다. 오늘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양심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다는데 안타깝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양심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다 보니 분쟁과 다툼은 필연적이다. 마음의 법정인 양심을 속이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여기에는 항상 맘몬(돈)과 바벨이 뒤 따른다는 사실.

그것은 오늘 돈을 좋아하는 성직자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개교회의 문제와 교단의 문제를 양심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맘몬과 학연, 교권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고, 결정된다.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이탈한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 한다면,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다툼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오늘 한국교의 지도자들의 양심이 마비되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가치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양심에 의해 교회의 문제, 연합단체의 문제, 교단의 문제, 이단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는 역사적으로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악이 존재하며,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 교회의 분규는 해결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신앙공동체는 해체됙호 있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직자들을 향해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양심을 강조한다. 김수원 목사는 교회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직자는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흔들리는 가치관과 양심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는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양심의 가책에서의 해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양심의 자명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분명 그릇된 양심은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 누구에게는 양심의 가책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 누구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 자신에게 범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에서 이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이 없다는데 있다. 분명 신앙을 내세운 양심에서 이탈한 행위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위이다. 성직자와 교인들은 흔들리는 양심 때문에 다수의 교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의 자책에서 고민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많은 양심수는 양심선언을 통해 자신의 양심을 지켰다.

칸트의 말대로 양심은 내적 재판정의 역할을 한다. 과거 양심선언을 한 인사들은 양심으로 양심을 되찾기로 하고, 양심으로 폭력과 압력을 업었다. 이것은 양심의 승리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들은 양심을 다시 폭력 앞에 굴복될 가능성 앞에서 양심선언을 감행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성직자와 교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양심을 마비시키면서, 맘몬과 바벨을 숭상하며,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양심을 내세워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관념으로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며, 로마평화(팍스)를 숭상한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양심을 마비시켜 가며, 성서의 법정신에서 이탈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데 중심에 서 있다. 하나님나라운동을 전제로 창간된 본지를 비롯한 교회 언론도 여기에 편승해 한 몫을 했다는데 부인하지 안 는다. 교회언론은 양심이 마비되어 가는 한국교회 성직자와 교인들을 향해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는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이 기능을 상실한 언론은 언론의 자유와 양심이 마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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