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주요뉴스
“천황을 섬기는 일본, 언젠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광복 74주년 특집…구한말의 한반도 둘러싼 강대국의 패권경쟁 다시 시동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8.09  11:48:4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일본의 경제보복, 정치적으로 악용 말라

광복 74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매우 곤궁하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강대국들의 패권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예상했던 일본의 경제보복, 한국과 일본 사이를 더 벌리려는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의 영공침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불난 집에 와서 방위비 더 내라고 겁박하며,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압박하는 미국 등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 때 야당 대표까지 나서서 적과 싸우는 정부를 공격하고,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한 영미선교사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기독교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막말을 쏟아내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평소 정적과 피투성이로 싸울지라도 외적의 공격 앞에서는 당파싸움을 멈추고,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 외적에 맞서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이들은 적과 싸우는 장수의 등에 비수를 꼽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권력에 눈먼 사람이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라고도 할 수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일본은 분명 대한민국에 크게 빚을 졌다. 제2차 세계대전서 패망한 일본은 6.25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무르익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은 멀고 험하게만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국민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 36년을 비롯한 한반도의 분단 등 우리민족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무능한 이씨 조선을 망하게 한 것도 우리민족이 아니다. 외세가 무능한 이씨조선을 무너트렸다. 민족해방 74주년을 맞은 한민족은 고난당한 역사를 생각하고, 미래 대한민국을 설계해야 한다.

1894년도에 일어난 청일전쟁과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반도에서 일어난 패권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한민족이다. 오늘도 일본은 과거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를 믿고, 일본의 경제전쟁에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헌데 일부 정치인과 일부 언론, 그리고 일부 종교지도자는 국민들의 이 같은 대처와는 다르게 행동해 안타깝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맞서, 일본이 경제보복을 단행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아니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일본경제를 따라 잡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경제보복에 들어갔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데,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대한 제동이라는 의심을 국민들은 지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서 정치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의 친일적인 발언, 매국노적인 모습은 가관이 아니다.

한마디로 일본의 경제보복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철저하게 악용하고 있다. 분명 일본의 경제전쟁은 겉으로 경제보복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이 땅에 친일정부를 세워 대한민국을 경제 식민지화 하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이 땅에서의 친일정부는 생각 할 수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들의 친일적인 발언과 행동은 민주화를 이룬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이들은 민주적인 정부를 인정할 수 없고, 외세에 기대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침략국인 일본은 대한민국과 동맹관계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과 교회지도자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잘못된 판단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오산

우리는 3.1만세운동을 10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일본 식민지세력의 총칼에 맞서 맨몸으로 나라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서 싸웠다. 3.1만세운동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서 비폭력운동이며, 예수님의 평화(샬롬)운동이다. 길이 남겨야 할 역사적 유산이다. 일본은 3.1만세운동 100년에 맞춰 자국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이다.

일본 자민당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에서 대한민국을 적대하며, 경제보복을 내세워 선거에 악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3.1만세운동 10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민에 의해 민주화를 이룬 위대한 나라이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는 외세가 들어와 발을 붙일 곳이 없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다. 일본 아베의 눈에는 경제적으로 비등해지는 대한민국이 눈에 가시인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자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경제전쟁이 대한민국의 경제에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이라며, 정부를 향해 일본과의 굴욕적인 협상을 요구한다. 민주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나라가 경제적으로 더욱더 곤궁해지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구한말 친일적인 개화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 하다. 한마디로 민주화된 정부가 망해야 자신들의 잃어버린 기득권, 정권을 다시 찾아 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곤궁한 백성들은 생각하지 않고, 나라는 어찌 되었건 오직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되찾겠다는 졸렬한 생각뿐이다. 일부 기독교의 목회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연일 친일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 눈도장을 찍기에 바쁘다.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일부 학자와 종교인, 정치인들이 미국이 도와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것은 한일갈등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취하는 미국의 태도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온 미국의 볼턴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한국에 와 정부 관계자를 먼저 만나지 않았다. 연일 친일적인 발언을 쏟아낸 야당의 원내대표를 먼저 만났다. 야당의 원내대표는 볼턴이 먼저 만나자고 해도 사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분명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동맹과 우방을 업신여긴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주일주보(8월4일자 제46권 제31호) 4면에는 <존 볼턴과 나경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그 내용은 존 볼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동한 것이었다. 볼턴의 행보는 일본의 하급관리들이 왕궁에 드나들며 감히 임금에게 이래라, 저래라 했던 구한말의 역겨움과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 주보는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오전 8시께 미국 대사관저에서 볼턴을 만났다’며, 볼턴으로부터 무슨 암시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문재인 정부 공격에 열을 올렸다. ‘북. 중. 러 공조가 긴밀해지고 있는데, 한일군사보호조약(GSOMIA) 파기라는 위험천만한 카드부터 커내는 물볼 안 가리는 돌격대장식 외교가 우리 안보에 틈을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이 주보는 “나 원내대표는 ‘동맹과 우방을 업신여기는 이 정권이 자초한 위기로서 한마디로 얼빠진 정권의 얼빠진 안보정책이 빚어낸 비극적 현실…주변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구한말 조선의 처절한 모습, 국제정세에 어둡고 발전을 게을리 한 무능한 왕조가 망국을 막지 못한 처참한 과거가 떠오른다”고 나 원내대표의 말을 그대로 소개했다.

미국 진정 우리의 이웃인가(?)

이어 “나 원내대표의 말은 그럴싸하지만, 팩트는 그 반대이다”면서, “한국을 도발한 것은 일본이다. 동네 불량배들로부터 폭행당한 자식을 향해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못난X’이라고 구박하는 자가 어미일까. 나 원내대표는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먼저 만나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나라의 품위를 생각했다면, 설사 볼턴이 먼저 만나자고 했어도 사양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한국교회의 다수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한 술 더 떠 ‘경제적 어려움’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한미공조 파괴, 자유민주주의 부정 등을 내세워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목사들은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SNS를 통해 퍼 나르기에 바쁘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기조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인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차분히 대처하는 국민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러면서 3.1만세운동이 기독교인의 민족해방운동이라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싶을 정도이다.

한국교회를 지도한다는 일부 지도자들의 행동은 더 가관이다. 한국기독교총무단은 국민 모두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여행을 중단하거나, 취소하고 있는데, ‘일본선교’라는 이름 아래 일본여행을 당당하게 즐겼다, 그것도 한국교회의 비난을 받으면서 말이다. 분명한 것은 교회나, 총회나, 성회나, 국가를 보면, 항상 기득권을 가진 자가 먼저 배신하고, 적이 되었다. 예수님을 배신한 자도 제자들이었다. 일제하에서 하나님을 배신하면서 신사참배를 교단적으로 결의한 자들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었다는 사실.

부산, 울산, 경남 기독교인 500여명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치 않을 경우, 문재인 정권 퇴진운동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문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떠한 체제의 통일 국가를 목적하고 있는지를 온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 줄 것과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며 준수할 것을 국민 앞에 천명할 것 △비핵화를 위한 각종 선언과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 김정은에게 더 이상 장단 맞추지 말고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 할 것 △현저히 무너진 국방을 신속히 재건하고 한미일 공조 및 동맹을 무조건 굳건하게 회복 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이 요구한 내용에도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을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몰각하지 않고서는 일본과의 동맹을 운운 할 수 없다. 미국은 분명 대한민국과 혈맹이며, 우방이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국가이다. 동맹이 될 수 없다.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교한 한국교회 목사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교회지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안타깝다.

우리의 적은 우리 안에 있다

일제 36년 식민지 아래서 정신대로 끌려간 이 땅의 소녀들, 일본군 총알받이로 끌려간 이 땅의 청년들, 일본 강제징용자로 끌려간 이 땅의 소년과 소녀, 청년들의 아픔을 몰각한 선언문이다.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새로운 나라를 갈망했다면, 이 같은 요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선언문도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남북관계 등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걱정해서 나온 말이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며, 예수님의 영원한 평화(샬롬)을 외쳐야 할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몰각한 내용의 관념적인 선언문을 발표했다는데 아쉽다. 어느 목회자는 “항상 민족을 배신하는 자는 민족 안에 있다”고 설교했다. 한마디로 민족을 배신하는 지도자는 항상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을 배신한다는 사실을 성서와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을 배신한 자는 보잘 것 없는 민중이 아니었다.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이 예수님을 배신했고, 제자들이 배신했다. 우리는 한일합방 당시 미국과 일본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기억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와 미국 육군대장 윌리엄 하워드는 도쿄에서 밀약을 가졌다.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것이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주목 한다

이로서 미국의 양허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 이 밀약에 따라 영미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한민족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교육,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한민족에게 구약성서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 교회 안에서 민족의식과 구약성서를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추방했다. 우리가 트럼프와 아베가 7번 만난 것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시아에서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에 자위대로 대치시키겠다는 일본 아베의 야욕이 드러났다.

일본은 영원히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흉계이다. 그 중심에 일본의회가 있다. 다시 아시아를 일본군의 군화발로 짓밟겠다는 속셈이다.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패권경쟁을 벌이는 일본을 비롯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을 믿을 수가 없다. 이들 나라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오늘 곤궁한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본의 경제전쟁이 선포된 이후 대한민국의 국민은 어려운 난국을 스스로 헤쳐 나갈 길을 차분한 가운데 찾고 있다. 민주화된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이나, 종교인, 친일 학자들과는 사뭇 다르게 정부의 대책을 믿고, 기다린다. 참으로 절제된 모습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통치한 대한민국과 침략해서 승리한 아시아국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부는 매우 친일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민족의식을 몰각한 대한민국의 일부 기득권자들은 일본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한미일 동맹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인내하며 차분히 대처한다.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차분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일본여행도 자제하고 있다. 일제 36년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에게 무릎 꿇는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의식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 학자들의 친일적인 태도는 한민족의 문화와 참담한 역사를 몰각한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일제 36년 고난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친일적인 행동은 자제 했어야 옳다. 일본은 한민족의 이웃이 아니다. 더구나 우방 또는 동맹이 아니다. 예수님이 말한 일곱 번씩 70번 용서하라는 성경구절을 여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지금까지 사과와 용서를 빌어본 적이 없다. 가던 길을 멈추지도 않았다. 믿을 수 없는 나라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와 사과가 전제되었을 때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불의는 공의를 이길 수 없다. 현재 일본 경제보복은 한민족에게 있어 까마득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천황을 신으로 믿는 일본은 언제인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곤궁하지만 한반도에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유달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인물 

“암흑 물리치고, 생명의 빛 회복시킨 역사적 순간 기억하자”

“암흑 물리치고, 생명의 빛 회복시킨 역사적 순간 기억하자”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그런 만큼 ...
해설
최근인기기사
1
멘탈경쟁력 강화, 행복으로 이끄는 열쇠
2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회, 평강제일교회 매각설 “사실과 달라”
3
하나님 바로 알고 세상의 빛 되는 아이 양육에 중점
4
자살예방 적극 알리며 생명 살리는 히어로 다짐
5
“우리의 시선이 교회를 바꿉니다”
6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위해 뜨겁게 기도
7
9월 총회, 반복되는 교단 해체 무용론
8
[원종문 목사] 주님!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1>
9
[김고현 목사] 다시 생각해 보는 광복절
10
[김승자 목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세상 간구하자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기독교한국신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8  |  등록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한국신문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달상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발행일자: 2012년 11월 5일
02)817-6002, 02)3675-6113 FAX 02)3675-6115
Copyright © 2011 기독교한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k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