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나무들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잠시도 너희들 잊지 않았다
 
강물들아, 울지 마라
우리가 한 몸이 되는
좋은 시절이 오고 말 것이다
 
바람아, 우리 언제 모여
밥 먹으러 가자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한솥밥
우리들 함께 먹는 밥
먹으러 가자
 
압록강아,
그날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 흘러만 가다오.

▲ 문 현 미 시인

식구끼리 모여 오붓하게 식탁에서 밥을 먹는 모습이 흔치 않은 시대이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 식구인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가족이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하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이야.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시인은 사람이 아니라 ‘바람에게 밥을 사 주고 싶다’고 한다. 시인이 선택한 독특한 제목이 사뭇 눈길을 붙든다.

1연부터 화자는 나무들에게 말을 건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위로하면서 나무들을 잊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2연에서는 강물들에게 울지 마라고 다독이면서 ‘한 몸이 되는/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쯤 되면 독자에게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왜 나무들과 강물들을 호명하고 있는가. 의인화된 나무와 강물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의 원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화자가 오래 전에 나무들·강물들과 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화자는 잘 지내고 있는데 나무와 강물은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 살던 곳에 대한 간절한 동경이 시의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3연에서 화자는 바람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한솥밥’을 먹자고 한다. 그만큼 그곳에 가고 싶다는 함의가 있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화자가 어디서 살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압록강이 있는 곳이니 북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시의 곳곳에 배여 있는 시이다. 나무와 강물과 바람에 대한 의인화 외에는 다른 수사적 장치가 없어서 시를 이해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북녘에 있는 자연물은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그곳의 가족과 친지 등을 지칭한다. 시인은 고향의 부모님, 친척,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무와 강과 바람을 호칭하는 형식으로 의인화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염원을 투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의 진솔한 고백으로 빚어진 시가 독자의 가슴에 무현금을 켠다. 한솥밥 먹자는 따뜻한 전언, 그 속에 깃든 실향민의 아픔이 나와 그대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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