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과거의 잘못 회개하지 않는 일본 아베, 용서 할 수 있는가(?)왜구가 침략해 오면 한민족은 하나가 되어 일본에 맞서 싸웠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8.29  10:35:4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일본의 경제보복, 이념갈등으로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곤궁한 가운데서도,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한국개신교와 정부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0월3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위해 청와대로 밀고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것도 “‘순교’를 각오했다”며, 뜻을 같이 할 교인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렇다 보수적인 한국개신교는 진보정보가 들어서면, 이 같은 방법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김대중 정부-노태우 정부-노무현 정부 등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그 때마다 시청 앞 광장에서 모여 반공궐기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진보정부의 가치를 훼손하기에 바빠다. 보수적인 한국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산주의, 아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정권과 가깝게 지내는 진보정부가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크게 자리를 잡았다. 공산주의인 북한의 김정은 보다는 과거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이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매우 곤궁하다. 보수적인 개신교인들과 일부 정치인, 일부 학자들은 국가의 자존심을 구기면서, 일본과 무조건 화해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이들은 일본을 동맹이며, 우방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러면서 ‘안보’를 이유 들어 연일 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는 북한을 비난하는 동시에, 북한의 이러한 행동에 침묵하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다.

왜 이들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해서는 화해하라고, 우방 또는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민족인 북한과는 화해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가. 거기에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목소리이다. 지금까지의 정부와 북한은 정권과 체제유지를 위해 민족분단을 철저하게 악용해 왔다. 히틀러는 혼자 유대인 600만명을 살해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의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관념’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요즘 보수적인 인사들의 행동은 과거 인권, 사회정의 등을 외치면서, 국사독재정권을 비롯한 친일정권 등과 맞섰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군사독재정권과 친일정권에 맞섰던 진보적인 교회를 향해 정치에 간여한다고, ‘정교분리’를 내세워 비난하던 보수개신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제는 민주화된 나라의 정부를 못 믿겠다고 아우성친다. 또한 이들은 일본 아베정부의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음에도, 침묵으로 일과해 왔다.

아시아-태평양에 주둔한 미군이 떠나면, 그 곳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것이 아베의 속셈이다. 간교한 아베정부는 미국에 붙어 온갖 잡 짓으로 아부하기에 바쁘다. 아베정부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의 동의를 얻어야 되는데, 민주화된 한국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친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일단계로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에 맞서 경제 보복를 단행했다는 것이 우리정부와 대다수 국민의 입장이다.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의 행동에 대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베의 경제보복에 맞서 우리정부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종료시켰다. 우리는 일본과 싸워서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일본 아베는 간교하다. 한국민족은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지 아래서 하나가 되어 왜놈들과 싸웠다. 보수적인 목회자와 친일정치인, 친일학자들은 이런 아픔을 몰각하지 않고서는 일본과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을 할 수 없다. 정부와 국민 대다수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여행을 비롯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을 차분하게 벌이며,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데, 여기에 초를 쳐서야 되겠는가.

친일적인 인사 대부분 그리스도인

이들은 일본 정신대로 끌려간 대한민국의 소녀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 매춘부의 길을 선택했다’고 비방하는가 하면, ‘징용피해자들의 보상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이미 끝났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분명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팔아 자신의 안위와 부를 챙긴 매국노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시각이다. 친일 정치인과 친일 학자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결과이다. 참담하다.

그것은 보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이라면서 회개를 말하며, 아베에게 사죄한다고 거꾸로 말하는 주모 권사의 행동과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을 돈 벌기 위해 매춘부가 되었다고 말하는 전 국회의원 송모씨와 김모씨의 행동을 보라. 이들도 그리스도인인가. 정신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이 언제 아베에게 돈 달라고 했는가. 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용서를 빌고, 사죄하라고 했다.

오늘 친일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국민들의 몰매를 맞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사랑과 용서를 가장 많이 외쳐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는데 안타깝다. 한국인은 아베가 과거 식민지 36년 동안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마음을 열어 그를 받아 줄 수 있다. 아베는 과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용서해 달라고 한민족에게 한 번도 빌지를 않았다. 한민족은 빌지를 않는데, 어떻게 아베를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오히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 가능한 나라로 바꿔, 다시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이고 있지 않은가.

미군이 떠난 자리에 일본군이 진주한다고 생각해 보라. 한반도가 다시 일본군의 군화발에 다 짓밟힌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분명 일본은 한국에 경제적 부흥의 계기를 가져다가 주지를 않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은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이다. 한국 때문에 부자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의 아베정부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남북한의 대화로 한반도의 평화가 무르익어갈 즈음 일본 아베는 트럼프를 7번 만났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베는 간교하다.

대한민국은 간교한 아베에게 희망을 걸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일본을 우방이며, 동맹이라고 말하는 친일적인 인사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친일적인 행동, 간교하고, 간사한 일본과 화해하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천왕(미신)을 믿는 일본은 망하고,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오늘 보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의 이같은 믿음은, 선교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영미의 정통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고, 분파적인 영미교회를 그대로 한국에 이식된 한국개신교는 우리의 토양에 맞는 한국적 신학을 만들어 내지를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배신하며, 신사참배를 결의해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강단에서는 해방자 하나님을 외치기보다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죄의 규탄과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다.

신사참배 결의해 ‘배교’ 서슴지 않은 교회(?)

한국기독교역사 130년을 뒤 돌아보면, 한국교회는 국가권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본 일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 말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는 왕의 절대권력과 밀착되었으며, 일본 식민지 아래서는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구약성서를 보지 못하도록 했으며, 이를 지키지 않는 교인들은 교회에서 추방하는 죄를 범했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정권 아래서도 교회는 권력의 주변에 있었다. 그것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체로서의 전통을 이루어 왔다. 교인들은 선교사들과는 무관하게 애국심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3.1만세운동에 전체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국민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반 아베운동과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 같은 애국심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본국의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는 3.1만세운동에 가담한 한국교회 교인들을 불순분자들의 반정부시위로 매도했다. “미국이 한국을 구원해 줄 것이다”고 믿었던 한국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실망한 기독교의 신앙을 가졌던 애국지사들은 교회를 떠나 1920년도에 창당된 공산당에 가입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또한 한국교회는 같은 해 남산에 신사가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 침묵했다. 오히려 한국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등은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 시대나, 오늘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 국민들은 “미국이 도와 줄 것이다”고 굳게 믿었다.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일본과 미국의 1905년 러일전쟁 직후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안다면, 이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는, 일본은 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기로 상호 승인했다.

이와 같은 양국의 범죄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은 미국과 일본의 밀월 관계에 주목하며, 일본의 경제보복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한국 국민이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곤궁해지고 있는데도, 미국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수적인 인사들의 미국이 도와 줄 것이라는 희망이 빗나갔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혈맹인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종료에 대해서 ‘실망스럽다’는 말을 사용하며, 우리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여기에다 친미주의자와 친일주의자들은 ‘한•미•일 동맹’ 또는 우방 국가를 내세워 친일적인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나라는 이념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천박한 목소리

우리민족은 왜놈이 침략해 오면 하나가 되어 맞섰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랬고, 일본 제국주의 36년에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대법원은 일본 강제징용자 배상판결를 내렸다. 이로 인해 일본은 경제보복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이념논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정부를 믿고, 차분하고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데, 기득권을 누려온 인사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미국의 입장에 서서 국민들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내향적 타계적 성향을 띤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해방 이후에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음과 양으로 일본의 죄를 규탄했다. 나라와 민족 사랑을 설교 내용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해 민족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해 왔다. 그런데 대학교수와 정치가, 목사의 입에서 일본 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의 아픔은 몰각하고, 일본에 몸 팔러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은, 이들이 관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전 국회의원 송모씨는 보수단체의 모임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향해 돈 벌기 위해서 매춘부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해, 여자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지도자라는 송모씨의 친일적인 발언은 국민의 정서에서 크게 이탈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경제침략은 노골화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생각은 천박하기 그지없다. 여기에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관념에 사로잡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교회를 걱정하는 이유가 발호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동맹이 아니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국이기 때문에 동맹이 될 수 없다. 우방도 될 수 없다. 글로벌시대에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더 이상 일본을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은 천박하다.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있겠는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고난당하던 민중들의 아픔에 대해 침묵했던 교회가, 오늘 민주화된 나라에서 할 말이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아래서 정교분리를 내세워, 고난당하는 민중과 함께 했던 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해 ‘정치꾼’이라며, 얼마나 매도했던 당시를 생각해 보라. 이들이 오늘에 와서 ‘정교분리’를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라며, 군사정권이 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며, 오히려 정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데 아이러니 하다. 이들은 분명 전두환정권의 피묻은 손을 위해 기도한 사람들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빌면, 용서 할 줄 아는 국민이다. 지금까지 아베는 정신대 할머니와 징용자들에게 용서를 한 번도 빌지를 않았다. 이들은 아베정권에게 돈도 요구하지 않았다. 용서를 빌면, 용서해 주겠다고 사죄를 촉구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과는 화해 할 수도, 용서 할 수도 없다. 아베정부가 세계민족과 이웃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 타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일본 아베도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베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사람과 동맹, 우방이라니 속이 비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들은 이 땅에 친일정부를 세워 자신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한일합방 당시 친일 내각인사들과 무엇이 다른가.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유달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인물 

윤보환 회장 “교회와 사회 갈등 극복, 화해에 앞장”

윤보환 회장 “교회와 사회 갈등 극복, 화해에 앞장”
“교회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일에 앞장...
해설
최근인기기사
1
[소강석 목사] 바로 그 사람
2
제23회 YWCA 좋은 TV프로그램상 대상에 ‘검블유’ 영예
3
김화경 목사 “전광훈 목사 애국운동 똑바로 해”
4
저출산 문제 민•관 공동 극복해야
5
루터대, 2020 정시모집 ‘디아코니아 학부제’로
6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 위해 헌신 다짐
7
여성 독립 운동가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사랑 되새겨
8
윤보환 회장 “교회와 사회 갈등 극복, 화해에 앞장”
9
교회협, “2020년, 한반도 평화 위한 ‘희년’” 선포
10
“통일화합나무 심어 민족복음통일시대 준비해야”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기독교한국신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8  |  등록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한국신문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달상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발행일자: 2012년 11월 5일
02)817-6002, 02)3675-6113 FAX 02)3675-6115
Copyright © 2011 기독교한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k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