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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권력 향해 외치는 쓴 소리, 그리스도의 본질에 충실 하는 것예언자적인 전통에 따라 곤궁에 처한 국민 위해 일하는 교회와 정치가 되자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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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0  16: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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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은 하나님나라운동

오늘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외교, 종교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의 목소리만 터져 나온다. 청치인, 종교인 등 모두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일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청을 높인다. 40년 전 전두환 정권 아래서 이 땅을 떠난 한 이민자의 말은, 오늘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1980년 이민을 떠날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정치도 안정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군사독재정권 물러가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한마디로 불안해서 살 수 없었다. 4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의 주머니도 넉넉해졌다. 이민 당시 오늘과 같은 대한민국이었다면, 이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전히 불안하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시위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이 민족을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다 오늘 대한민국은 일본 경제보복으로 인해 매우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이를 둘러싸고 국민들 사이에 끊임없는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여당과 야당, 그리스도교와 정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국민들은 “교회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는데 목사와 교인들이 나서서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발언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편견 없이 보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한국의 기독교는 사회적, 경제적, 남북한 통일문제 등 나라의 흥망성쇠에 매우 예민했다.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는 선교사들의 ‘선교정책’과는 무관하게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기도하며, 행동했다. 해방 후에는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회생을 위해 헌신했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서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밖에도 한국교회는 통일운동과 빈민운동, 농민운동에 있어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진보적인 교회의 강단에서 나오는 목회자 설교 대부분은 죄의 규탄과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내용이었다. 가난한 자, 눌린 자의 인권과 사랑을 호소하며, 새로운 나라의 소망을 가져다가 주었다. 국민들은 사회적 구조 악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인식했다. 그리고 가해자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며, 사마리아인처럼 강도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을 돌봐주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이런 목회자와 교인들은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로부터 ‘정치목사’로 매도당했다. 오늘 정권이 바뀌면서, 이들은 진리와 원칙에서 벗어나 정권을 향해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국가라는 지평을 떠나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애국심이 강한 공동체로서의 전통을 이어 왔고, 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하나가 되어 일본과 맞섰다. 기독여성과 기독농민, 기독학생, 기독교 지식인들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3.1만세운동은 이를 대변해 주고도 남는다. 그것은 당시 한민족에게서 보인 전반적인 현상이었고, 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일본의 죄’를 규탄했다. 목회자들의 설교내용은 민족애를 고취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또한 교육을 통해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무엇보다도 3.1만세운동은 예수님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민족운동이고, 독립운동이라는데 의미를 갖는다. 해방 이후에는 철저한 반공운동과 민주화운동, 분단극복과 통일운동으로 애국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운동 모두는 ‘정치운동’이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보수적인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것도 애국심의 발로인 정치운동이다.

정치권 믿을 수 없다면, 교회라도 가슴 열고 사마리아 정신 실천
국민들의 정의롭고 공정한 국정운영 요구에, 정치인들은 진실 되게 응답하라

그리스도인 모두는 나라를 걱정한다

오늘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요구하며, 현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애국심의 발로이며,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충실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그리스도인이 정교분리를 무시했다느니, 현 정부를 하나님의 권세와 일치시키며, 그리스도교를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 없었다.

오늘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 앞에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한목소리로 일본 경제보복을 규탄하며, 정부를 믿고 차분히 대처한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미국의 정책을 비판 없이 무조건 받아드리고,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또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 역사의 현장서 이탈해 ‘관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일부목회자들은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다.

한국교회는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고, 성명서를 내고 집회를 갖더라도 호소의 성격을 벗어난 일이 없다. ‘동성애 절대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대통령 회개’, ‘정의롭고 공정한 정부가 되시오’, ‘국가안보 튼튼하게 해 주세요’ 등을 요구하는 정도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면 광화문 광장서 집회하는 정도이다. 독재정권 아래서는 ‘구속자 석방’, ‘민주적인 헌법’ 등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한마디로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정부의 문제를 알림으로써 평화롭고 더불어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충정의 발로이다.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정부가 성서에서 이탈하면, 분명하게 목소리를 냈다. 한국교회의 애국적 충정이 잘못된 정부의 시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목회자와 교인들을 반국가적 죄인 취급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권력과 국가를 일치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은 권력을 절대화하여 권력과 국가를 일치시키고, 인권을 마치 정부의 소속처럼 하며, 정부만이 가치관을 창조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보수적인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이 맹종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몰각했다. 즉 이런 정부는 “내게는 너를 놓아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달게 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한 빌라도 법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민에 의해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다. 지금은 국민이 우선하는 나라이다. 이제 국민들은 잘못된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고, 잘못된 정치인들을 비난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설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교는 국가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관념’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국가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애기다.

그리스도인의 국가관 정립 필요

안병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1986녀, 한길사) ‘그리스도교와 국가권력)에서 그리스도교의 국가권력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먼저 그리스도교는 인권이 국가에 우선한다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국가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인권은 하나님에게 직속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가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있지 인권이 국가를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국가는 보존의 질서이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고 했다. 국가는 하나님이 준 것을 보전하는 질서이지, 그 자체의 목적에 따라 있는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국가는 장점적인 공동체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삶을 보장 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국가지상주의를 철저하게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와 정부는 엄연히 구별된다. 보전의 질서로서의 ‘국가의 기능’을 위하여 권력이 주어졌다. 그리스도교의 ‘권력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 직속된 민이 국가의 주인이 될 때 그 인권이 가장 적게 침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민주국가에서는 충돌할 이유가 없다. 충돌이 된다면, 정부가 국가와 동일시하고, 정부의 힘을 국가 전체 삶의 전역에 확대하여 공복의 자리에서, 다스리는 주인의 자리로 옮겼을 경우이다.

역사상 이런 충돌은 계속되었다. 역사상 정권과 종교의 충돌은 정권이 권력을 남용할 때 생겼다. 어떤 민족사이건 처음에는 국가적 통치권과 종교가 한 배에서 난 쌍둥이처럼 공존했다. 오히려 이런 형태를 유지하려고 안간 힘을 섰다. 그리스, 고대로마, 이집트, 인도, 영국, 중국 등이 그러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나라는 국가의 장이, 곧 종교의 장이었다. 종교인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사실 한국 장로교는 일본식민지세력에 협력하며, 법인 6개를 얻었다. 또한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일제 말 일본국가주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를 서슴치 않았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을 비롯하여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심지어 군사독재정권의 ‘피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 서운 했던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교신자였다는 것이다.

곤궁해진 나라 위해 기도하자

이들은 진보적인 목사들을 향해 ‘정치목사’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맞서고 있다. 심지어 개신교와 정부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에 맞서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곤궁한데,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문재인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연일 외치고 있다.

여기에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던 법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나라는 온통 법무장관 가족들이 연루된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국내 정치권은 물론, 개신교와 정부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관념’에 의한 이념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을 운영하거나 영세 소상공인들은 IMF 때보다 더한 경제 한파를 느낀다고 걱정한다.

이런 상황서 정치인들은 고난당하는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고, 정쟁만 일삼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일부 교회지도자들은 일본 아베정부의 만행은 생각하지도 않고, 한일군사정보비밀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 낸다. 기독교 친일인사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 벌기 위해 자원한 ‘매춘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권사님은 아베에게 사죄까지 하며, 모 단체의 집회에서 국민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말한다. 정당의 원내대표는 영호남 지역감정을 다시 부추긴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이념갈등을 부추기며, 정쟁만을 위한 행동이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이웃의 아픔을 들춰내 상처를 입히기에 급급하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과 지식인, 목회자들이 있는 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할 수 없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모두가 알자.

국민의 아우성소리를 들어라

국민들은 너나없이 모두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치권은 이런 목소리는 외면한 채, 오로지 벌써 몇 주째 법무부장관 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 진흙탕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 정쟁에만 함몰되어 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사법부 개혁의 최적임자라 보고 반드시 법무부장관에 임명해야 하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야당은 과거 SNS를 통해 무차별적인 비판을 쏟아내 미운털이 박힌 그와 가족을 둘러싼 특혜 부정 의혹 등을 연일 폭로하며 망신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과 정치의 폭로전은 한 여성을 살인 수준에 이르렀는가 하면, 법무부장관 후보의 가족은 만신창이 되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누가 장관이 되냐 안 되냐 하는 문제에 그리 관심이 없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박하다. 그런데 국민의 삶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할 국회가 여야 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매일 지루한 폭로전과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는데 국민들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국민을 위하지 않는 정치,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치는 불필요한 것이다. 지금 온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국가 경제가 점점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데 오로지 장관 후보자 한 사람을 세우느냐, 낙마시키느냐 이 한 가지에 올인 하는 정당, 그런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국민들은 오늘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겹고 역겹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국민들의 정의롭고 공정한 국정운영에 진솔하게 응답해야 한다.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다. 한가위 추석은 한여름 땀 흘려 농사지은 그 대가를 자신과 가족 뿐 아니라 나보다 못 사는 이웃들과도 더불어 나눈 아름다운 세시풍속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치권이 저모양이라 기대할 게 없다면, 한국교회만이라도 이웃을 위해 가슴을 열고 진정으로 선한 사마리아 정신을 실천하는 절기로 삼아보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바로 성서로 돌아가는 것이며, 성서의 교훈과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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