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우리는 그 날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그 날은 6월 25일, 주일이었고, 북한군이 무서운 화력을 앞세워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피아간에 얻은 것이 만에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전쟁에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는 전리품을 나눔으로 전쟁의 상처를 다소나마 싸맨다.
그런데 그 날, 그 전쟁에는 승자는 없고 패자뿐이었다. 그렇게 슬픈 전쟁, 아프기만 한 전쟁이 63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던 6.25사변이다. 유사 이래 지구촌에 이런 전쟁이 또 있었을까? 그 날의 아픔을 남한과 북한이 입은 엄청난 피해를 뒤돌아봄이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 싶다. 남한은 전선이 교착되기 전인 1951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았는데 포성이 울려터진 뒤로 15개월 안에 입은 재산 피해가 20억 달러에 달했으니 이는 1949년의 국민총생산을 능가하는 액수였다면 짐작이 갈 것이다.
같은 해 국민총생산은 9.7%였지만 50년 -15.1%, 51년 –6.1%였다는 통계가 전쟁피해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는 말씀은 북한에 그대로 응했다. 왜냐하면 북한이 입은 피해가 남한에 비해 훨씬 혹심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 기간 내내 피해를 입었으며,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미군의 융단폭격은 계속되었다. 전쟁 중에 8천7백여 개의 공장, 기업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4분의 1이상의 농토가 피해를 입었고, 9만 정보의 농경지가 감소된 것을 비롯해서 북한이 입은 총 피해액은 4천2백여 억 원(북한 구 화폐)에 달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수이다. 이렇게 큰 피해를 당한 것은 평양에 투하된 43만발의 폭탄을 비롯해서 전역에 1평방킬로미터당 18개의 폭탄이 퍼부어졌기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개전 이후 1953년 4월말까지 미군은 26만발의 중대형 폭탄, 2억 발의 탄환, 약 40만 발의 로켓탄, 약 150만발의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다. 이것은 태평양전쟁 중에 사용한 총 폭탄 량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대미문의 초토화 작전과 융단폭격으로 한반도는 폐허로 변했고, 특히 북한 지역은 '원시상태'의 땅으로 돌아갔다.
이런 피해는 세월이 흐르면서 회복 가능한 것이지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이 강토에서 스러져갔으니 북한인구의 28.4%인 272만여 명이 사망과 난민으로 사라졌고, 남한에서는 133만여 명이 죽어 갔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를 사망자와 행불자를 합해서 13만 명 정도라 했지만 커밍스 할리 데이는 100만 여명으로 추정하고, 미국은 6만 3천 명 정도의 희생자를 냈다고 했다. 특히 인명피해 가운데 민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서 남한은 전체 사상자의 50%, 북한은 80%에 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이 땅 금수강산에서 이런 전쟁이 있기를 바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개혁총회 전총회장·본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