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최근 대통령께서 나라 장래를 염려하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진실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오히려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6.25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침이 아닌 북침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단순통계를 보고 지나치게 염려했다는 것이고, 그 통계는 질문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그런 통계가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날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그 날은 6월 25일, 주일이었고, 북한군이 무서운 화력을 앞세워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피아간에 얻은 것이 만에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처절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전쟁에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는 전리품을 나눔으로 전쟁의 상처를 다소나마 싸맨다.

그런데 그 날, 그 전쟁에는 승자는 없고 패자뿐이었다. 그렇게 슬픈 전쟁, 아프기만 한 전쟁이 63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던 6.25사변이다. 유사 이래 지구촌에 이런 전쟁이 또 있었을까? 그 날의 아픔을 남한과 북한이 입은 엄청난 피해를 뒤돌아봄이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 싶다. 남한은 전선이 교착되기 전인 1951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았는데 포성이 울려터진 뒤로 15개월 안에 입은 재산 피해가 20억 달러에 달했으니 이는 1949년의 국민총생산을 능가하는 액수였다면 짐작이 갈 것이다.

같은 해 국민총생산은 9.7%였지만 50년 -15.1%, 51년 –6.1%였다는 통계가 전쟁피해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는 말씀은 북한에 그대로 응했다. 왜냐하면 북한이 입은 피해가 남한에 비해 훨씬 혹심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 기간 내내 피해를 입었으며,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미군의 융단폭격은 계속되었다. 전쟁 중에 8천7백여 개의 공장, 기업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4분의 1이상의 농토가 피해를 입었고, 9만 정보의 농경지가 감소된 것을 비롯해서 북한이 입은 총 피해액은 4천2백여 억 원(북한 구 화폐)에 달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수이다. 이렇게 큰 피해를 당한 것은 평양에 투하된 43만발의 폭탄을 비롯해서 전역에 1평방킬로미터당 18개의 폭탄이 퍼부어졌기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개전 이후 1953년 4월말까지 미군은 26만발의 중대형 폭탄, 2억 발의 탄환, 약 40만 발의 로켓탄, 약 150만발의 네이팜탄을 쏟아 부었다. 이것은 태평양전쟁 중에 사용한 총 폭탄 량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대미문의 초토화 작전과 융단폭격으로 한반도는 폐허로 변했고, 특히 북한 지역은 '원시상태'의 땅으로 돌아갔다.

이런 피해는 세월이 흐르면서 회복 가능한 것이지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이 강토에서 스러져갔으니 북한인구의 28.4%인 272만여 명이 사망과 난민으로 사라졌고, 남한에서는 133만여 명이 죽어 갔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를 사망자와 행불자를 합해서 13만 명 정도라 했지만 커밍스 할리 데이는 100만 여명으로 추정하고, 미국은 6만 3천 명 정도의 희생자를 냈다고 했다. 특히 인명피해 가운데 민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서 남한은 전체 사상자의 50%, 북한은 80%에 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이 땅 금수강산에서 이런 전쟁이 있기를 바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개혁총회 전총회장·본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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