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단정(端整)”이란 사람과의 관계.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질서 있는 삶의 모습을 성경은 ‘단정하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이웃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에게 고요하고도 평안한 삶의 정황이 필요하다.

국가지도자를 위한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는 중에 왜 “경건”과 “단정(端整)”을 말씀하는가.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 즉 정치지도자의 역할과 그 결정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 삶의 상황에 중요하고도 깊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우리가 분리하려는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액션에 우리는 무관심 할 수가 없다. 또 누가 정치를 하느냐에 대하여도 무관심할 수가 없는 이유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치지도자로 세워져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에서 바로 살게 하기 위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성경은 교훈한다.

한 사회학자가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집단의식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우리네 공동체의식이 공공의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한국인이 가진 일반적 집단의식, 즉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학교 등으로 집단의식의 영역이 매우 좁기 때문이고 그 원인을 농경문화에 찾는다.

그 옛날 집의 중요한 것이 담이다. 담과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력한 우리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내 집 울타리를 벗어나면 우리의식이 현저히 희박해 진다. 집안의 자기 물건을 아끼던 사람이 울타리를 벗어나면, 오히려 함부로 하여 넓은 의미의 우리의식마저 실종되고 만다.

우리 민족과 아주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애국심을 가진 민족이 유대인일 것이다. 유대인들의 애국의 태도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 이유를 유대민족의 유목문화로 해석한다.

유목문화를 가진 유대인들은 양등의 가축 떼를 이끌고 풀을 따라 이동하며 산다.

목초지를 따라 계속 이동하는 그들은 가족보다 더 큰 스케일의 부족이 중요하다.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중에 가족만으로는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음과 안전을 지킬 힘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부족 또는 종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함께 싸워야 하고, 함께 함으로 자신을 지켜 낼 수 있기에 가족보다 더 넓은 공동체 즉 부족, 종족, 더 나아가 민족으로의 공동체의식의 확대는 자연스럽다. 그런 의식이 유대인의 독특한 애국심을 만드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토착 농경사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집, 울안에서는 강력한 가족의식을 갖지만 울을 넘어서면 큰 사회 공동체성이 아주 희박하다. 물론 우리가 나라를 생각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나라를 깊이 생각하는 때는 나라가 거의 망할 때이거나, 나라가 망한 다음에야 한국인들의 애국심이 발휘되기 시작하고, 애국의 투혼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평소에 가족 공동체를 넘어 사회와 국가 공동체를 위한 시민의식이 발휘하지 않고, 위기가 닥쳐서야 발휘되는 특이성을 지녔다.

나라의 미래가 결코 나의 미래와 무관 할 수 없다. 우리는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 사회는 운명 공동체로 묶여 있다.

성경이 왜 우리국가를 경영하고,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 우리의 평안을 결정함에 있어 정치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직접적이며 중요하기에 우리가 정치의 영역에 무관심 할 수 없음을 성경은 가르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생각하는 자세 혹은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최대의 방편으로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

디모데전서 2:1절의 “첫째”는 몇 가지 중의 첫 번째를 말하는 첫째가 아니다. 둘째가 없는 첫째다. 여기 첫째는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용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영역에서 많은 의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중요한 의무가 “기도”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간구, 기도, 도고, 감사기도 등의 기도의 여러 형태들이 등장한다. 바울은 모든 방법으로 기도할 것을 권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사용 가능한 모든 형태의 기도, 혹은 기도의 유형과 수단들을 동원하여 기도할 것을 교훈한다.<다음호에 계속>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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