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한국신문 7주년을 기념해 열린 심포지엄은 뉴스앤넷 발행인 이병왕 목사의 사회로, ‘한국교회와 항일 민족운동’이란 주제에 대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이재천 목사와 근대문화진흥원 원장 이효상 목사가 각각 발제했다.

“3.1운동은 민족의 십자가를 교회가 진 사건”이며, “한국교회의 항일운동에서 100년의 미래를 약속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기독교신문방송협회 주최, 기독교한국신문(발행인 및 편집국장 유달상 장로) 주관으로 지난 4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된 ‘3.1운동 100주년 심포지엄’에서다.

기독교한국신문 7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뉴스앤넷 발행인 이병왕 목사의 사회로, ‘한국교회와 항일 민족운동’이란 주제에 대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이재천 목사와 근대문화진흥원 원장 이효상 목사가 각각 발제했다.

▲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이재천 목사는 우리 항일 운동과 기독교의 모습을 비추어, 그 속에서 미래를 찾아볼 수 있는 숙제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제국에 반하는 복음의 본질 버려

먼저 발제에 나선 이재천 총무는 “한민족의 기독교 수용은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선교사 중심의 복음전파를 기술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발적인 기독교 수용세력에 의한 저변이 확고한 상태에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초기 기독교 세력은 북한, 만주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며, “그것은 기존 질서, 소외된 지역에서 외세의 침략으로 몰락하는 것을 일으켜 세우려는 대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덧붙여 말하자면, 조선에 내쳐졌던 집단들이 대안으로 발견했던 ‘희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총무는 또 “민족해방 운동의 관점에서 초기 교회가 3.1운동 이후에 탈정치화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준엄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며, “1907년 평양부흥운동 100년을 기념하면서 한국교회가 보였던, 한번 일어날 것 같던 부흥의 물결이 정말 이벤트로 끝나 버렸다. 적어도 한국기독교는 덩치는 커졌지만, 기독교에 대한 평가를 보편화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히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가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항일민족운동과 관련지어 볼 때, 기독교의 탈정치화를 통해서 저 세상, 탈 세상화, 개인 신앙화로 기독교의 일면성을 부각시키는 이데올로기적인 해석은 편협한 해석”이라며, “이 부분에 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들, 민주주의에 앞장선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왕권 왕조에 역사를 한순간에 포기해버리는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왕조를 포기했다”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실제 역량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기독교가 없었다면, 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대체 할 수 있는 역량을 충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기독교가 해방이후에 나라를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점을 부각시켰다.

덧붙여 “한국교회가 3.1운동 관점에서 봤을 때, 항일 민족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요한계시록 교회의 정통에 서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지역교회의 전통을 우리의 것으로 삼았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처럼 그 지역의 선교회는 그 지역에 이름을 땄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이제 교회는 지역의 그루터기로서 지역을 살리는 생명의 터전으로, 나 혼자 크는 교회가 아니라 온 세상을 연결해 더불어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참 소망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항일운동으로서의 지역교회의 역사를 비추어 본다고 해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과거에서 찾는다고 할 때, 교회의 이름 바꾸기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함께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끝으로 이 총무 “교회의 역사는 제국의 확장역사였다. 제국의 확장의 채널을 타고 복음이 확장되었다. 우리도 그 덕분에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속성은 제국에 반하는 것이어서 외피는 제국의 역사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제국의 가치관에 맞서는 ‘삶의 양식’인 새로운 가치관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제국이 ‘힘으로 세상을 구원한다’, ‘권세로 평화를 이룬다’ 등의 제국의 논리를 대안적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이 교회의 실제 모습”이라면서, “‘세상의 신이 아니라 내가 약할 때 강하다. 하나님의 능력밖에 길이 없다’는 이 논리를 제국 안에서 제국에 반하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의 멋진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기독교 스스로 제국에 반하는 복음의 본질을 버리고, 제국에 편드는 신학, 신앙, 교회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다. 초기교회 복음의 순수성을 벗어난 아픈 모습”이라며, “이 부분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항일 운동과 기독교의 모습을 비추어, 그 속에서 미래를 찾아볼 수 있는 숙제”라고 한국교회가 나갈 방향을 숙제로 던졌다.

▲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근대문화진흥원 원장 이효상 목사는 “일부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정치적 기능을 제거하려 노력했지만, 교회는 저항과 투쟁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봤다.
저항과 투쟁이라는 정치적 기능 수행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효상 원장은 “100주년을 맞은 3.1운동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민족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자, 항일 독립운동”이었다며, “이를 태동시키고 불을 당겨 확대한 주도 세력은 바로 신앙의 선배들이었다. 3.1운동을 시작한 신한청년단을 결성하고 이끈 인물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다”고 소개했다. 

또한 “3.1운동은 한국교회가 현실에 참여하기로 결단한 사건이었다. 학생들과 교회는 이 운동에 자발적·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동자가 됐고, 지도력과 조직을 제공하고 통로가 되어 기여했다”며, “비록 이 운동으로 민족 해방과 조국 독립은 성취하지 못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여러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정신과 독립운동의 불길을 일으키는 불씨가 됐고, 내부적으로는 임시정부 수립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기독교인들의 현실 참여를 철저히 막은데 반해,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거의 모두 신앙적 결단에 의해 참여했다”면서, “일부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정치적 기능을 제거하려 노력했지만, 교회는 저항과 투쟁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봤다. 

아울러 “3.1운동으로 교회가 지불한 대가는 참으로 컸다. 평신도를 포함해 목사, 장로, 전도사, 교사 등 교역자들까지 적극 참여하고 운동을 주도했으므로, 교회는 일제의 주목을 받아 핍박과 피해가 심각했다”며, “그러기에 기독교는 항일 민족저항 운동의 한 방편으로서 ‘민족 교회’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와 사회의 오늘날 발전 뒤에는 많은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 민족적 죄를 회개하고 순교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면서, “항일 민족운동과 주기철 목사, 윤동주 시인과 유관순 열사 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우리를 다시 그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3.1운동은 민족의 십자가였고, 이 십자가를 교회는 짊어진 사건”이라며, “현재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순교신앙’”이라고 전했다.

,서헌철 목사는 “이제 국민 모두는 용어부터 개선하자"며, "‘반일’ 대신 ‘항일’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언론이 먼저 선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방청객으로 참석한 이우송 신부는 “대한민국이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어렵다고 말하지 말자.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1위이다. 이미 강대국의 반열에 있다“면서, ”포유류 중에 돌고래처럼 영리한 동물이 없다. 두 마리의 돌고래가 힙을 합치면, 주변 강대국들을 능가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돌고래가 머리를 맞대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자. 또한 한반도의 문제를 우리스스로 우리의 땅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자“고 한민족의 자존심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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