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사 랑 목사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외교적,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 어디하나 국민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곳이 없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은 현실적인 일들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 간에는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져 반목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를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부추긴다는데 한마디로 참담하다. 해방과 함께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이념적 갈등과 사상적 갈등 속에서 살아 왔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 번도 하나가 된 적이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분파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해방 후 교단간의 갈등과 분열은 도를 넘었다. 오늘 장로교만 300여 교단으로 분열됐다. 이런 한국교회가 남북통일과 국민화합을 위해서 봉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한 간에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며, 예수님의 평화(샬롬)보다도, 힘에 의한 평화(로마팍스)를 부르짖는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북한은 사회주의이며, 공산주의이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했기 때문에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머릿 속에 꽉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상황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북한독재정권의 세습은 국민들에게 좋게 비쳐질 리가 없다. 한국교회는 김일성 3대 세습을 비난하면서, 한국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은 대형교회를 넘어 중소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러진 3대 세습을 비난하기 전에,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되라고 충고한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창조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분열된 곳에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도 없다. 종교 간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사회나, 교회를 보면, 부자 부모를 만나고, 돈이 있어야만 인류대학에 가고, 큰 교회에 부임할 수 있다.

이같은 생각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면, 같은 생각이다. 상위 1퍼센트는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 한다. 귀족노조에 속한 자들도 직업을 대물림 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조국 전법무장관의 임명과정에서 상위 1퍼센트의 부조리한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보통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조국 전법무장관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대학교수, 의사, 법률가들의 자식들이 부정하게 대학에 들어가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것이다.

대학교수와 정치인들은 가장 깨끗하고, 양심적으로 살아왔고, 국민들에게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 해 왔다. 이들은 공정한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에서 분명 보통국민의 적이다. 이들은 국민의 곤궁한 삶에는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희생자, 위안부 할머니, 일본 강제징용자 등을 향해 막말을 쏱아내며,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이 막말은 자신의 패거리들로부터의 보상을 노리고 내 뱉은 말이 아닌가.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다. 이스라엘은 왕권 이전에는 부족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을 결정했다. 부족을 이끈 부족장은 평상시에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전장에 나갔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그것은 구약성경 사무엘하 1장 17-27절에 잘 묘사되어 있다. 다윗은 통일왕국을 이루었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든지 슬픔에서 빠져 나오게 하려고 했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공동체의식이 전혀 없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승리는 그리스도께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오늘 교회가 말하는 승리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는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하는 나라이다. 순교자는 이 세상에서 받는 보상이 아무것도 없다. 개혁교회는 여기에 목적을 두고 탄생했다.

마라나타세기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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