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최근 일본 언론에 동북아의 정세와 맞물려 코렉시트(Korexit)라는 새 말이 생겨났다.<경향신문 2019년 2월 18일> 일본 한 매체는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미일의 대북공조에서 한국이 이탈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며 만들어낸 용어다. 예상하듯 코렉시트는 한 동안 회자되던 브렉시트에 뿌리를 둔 파생어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개념으로 영국(Britain)과 퇴장(exit)의 머리말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역사적으로 브렉시트는 16-17세기에 일어나 개혁 신앙의 불길을 당긴 적이 있다.

루터로 대표되는 유럽 대륙의 교회개혁 운동은 바다 건너 영국까지 여파가 미쳤다. 이미 14세기 위클리프의 성서번역과 개혁운동이 미완으로 남겨진 상황에서 16세기 영국교회는 개혁 세력이 다시 한 번 결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당시 제네바의 칼빈은 영국교회의 개혁에 큰 관심을 두고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고 에드워드 6세에게 주석 책을 헌정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영국교회는 공동기도서와 신조를 만들어 교회개혁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피의 메리’ 여왕이 즉위하며 300여명의 교회개혁가들을 처형하자 개혁 운동이 주춤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가 정신적 후원자인 칼빈을 찾아 제네바로 피신하였는데 그들이 영국교회개혁을 부르짖던 청교도의 뿌리가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등극 후 칼빈을 통하여 개혁신앙으로 교육받은 이들이 영국에 돌아와 ‘언약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들은 곧 대부제도의 철폐, 성일과 성호 금지, 사제의 복장 반대 등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난 인위적인 권위를 배격하는 일련의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리하여 성서에 ‘엄격한 사람들’(precisians), 또는 ‘교회를 정화하는 사람들’(puritans)이란 뜻의 ‘청교도’로 불리기 시작한다. 청교도들은 1563년 캔터베리 성직자회, 곧 영국교회 입법기관에 교회개혁안을 상정하였다. 안타깝게도 최종심의에서 한 표 차로 채택되지 않자 불복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영국교회는 승복하지 않는 개혁파들을 추방하거나 지위를 박탈하는 등 압박하였다. 그러자 청교도들은 영국을 떠나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자며 마침내 1620년 메이플라워 호(號)를 타고 102명의 필그림 파더스가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 이듬해부터 10년 동안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탈출한 행렬이 1만 8천여 명에 이르렀다. 영국의 청교도가 망망대해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공간에 진입한 것이다.

영국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히브리 전통에 충실하려던 사람들이었다. 교회개혁자들이 내세운 ‘오직 성서’는 상대적으로 교회 전통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청교도들 중에는 개혁을 위해서 히브리적 뿌리와 정신을 강조하고 약속의 땅으로 ‘출애굽’한 사람들로 여겼다. 곧 그들은 이집트와 같은 압제의 땅 ‘영국’으로부터 건널 수 없는 홍해 ‘대서양’을 지나 하나님이 예비한 가나안 ‘신대륙’에 들어간 사람들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하여 청교도가 세운 국가를 한 때 ‘하나님의 미국 이스라엘’(God’s American Israel)로 칭한 적도 있다.<마빈 윌슨, 『기독교와 히브리 유산』 151.>

그렇다면 기원전 13세기에 이집트에서 벌어졌던 히브리 노예들의 탈출을 이스렉시트(Isrexit)로 부를 수 있을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는 엄밀하게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과 같은 듯 다르다. 영국은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의 분담금과 과도한 규제가 자국의 이해와 상충된다며 국민투표에 붙여 최종 탈퇴하기로 결정하였다(2016년 6월 23일).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 이집트의 억압과 착취를 견딜 수 없어 자유와 해방을 찾아 탈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차이는 분명하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건너간 사건은 17세기 버전 브렉시트다. 영국교회의 극심한 탄압과 핍박을 받던 개혁파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고 그 당시 항해술로 건너기 어려운 새 대륙에 진입한 과정이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간 과정과 흡사하다. 17세기 브렉시트는 기원전 13세기 출애굽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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