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 1601~1658)은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고 했다. 친구는 곤궁한 삶 가운데 있을 때, 힘이 되어주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목사인 필자는 가끔 나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를 나에게 물어본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의 재산을 물려줄 상속자가 없었다. 그는 죽기 전 변호사에게 자신이 죽으면 새벽 4시에 장례를 치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유서 한 통을 남기고는 장례식이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뜯어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새벽 4시에 치러진 장례식에는 불과 네 사람만 참석했다. 고인에게는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말 귀찮고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달려와 준 네 사람은 진정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장례식을 경건하게 치렀다. 진정한 친구였다. 드디어 변호사는 유서를 뜯어 읽어 내려갔다.
“나의 전 재산 4천만 달러(한화 4,800억원)를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유서의 내용의 전부였다. 장례식에 참석한 네 사람은 각각 1천만 달러(1,200억원)가 되는 많은 유산을 친구로부터 물려받았다. 그 많은 유산을 엉겁결에 받은 네 <친구>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사회에 환원하여 고인의 이름을 딴 도서관과 고아원 등을 건립하여 <친구>에게 보답했다. 우리는 흔히 4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첫째, 꽃과 같은 <친구>이다. 즉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 지고나면 과감히 버리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를 말한다. 다음은저울과 같은 <친구>이다. 저울이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기울듯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이다.
그 다음은 산과 같은 <친구>이다. 산처럼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고,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이다. 넷째, 땅과 같은 <친구>이다. 땅은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이다.
요즘은 SNS친구들이 많다. 그러나 <친구>는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 그 깊이가 중요하다.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물질, 사회적 지위나. 힘이 모두 없어져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고 따라와 줄 진정한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 그리스도인은 곤궁한 오늘의 상황 속에서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자.
예장 보수 총무•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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