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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하나님은 배척당한 자의 아우성을 듣고 일 하신다”갈수록 변질되는 성탄절(2)…상흔에 물들어가는 성탄절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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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2  1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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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기다림•희망의 종교

대림절이 시작됐다. 흔히 기독교를 기다림의 종교이며,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대림절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성탄절 전 4주간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때 성도들은 금식하고 성직자들은 자색 옷을 입고 예배를 집례 했다. 전통적인 기독교국가인 유럽에서는 대림절에서 성탄절 전날까지 어떤 요란한 행사도 하지 않고, 침묵과 경건으로 이 기간을 보내며,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졌다. 요즘 대림절 기간에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대림절이 연말과 겹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이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풍요로움 속에서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선물을 고르며 망년회 파티를 준비하는 절기로 변질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림절은 그리스도께서 이 죄 많은 세상에 오신 참뜻을 묵상하며, 죄에 묶였던 우리들이 오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과 은총의 빛을 바라보는 절기이다. 그래서 대림절은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을 기다리며 참회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을 일컬어 엄숙한 분위기에서 참회하는 ‘겨울의 사순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글로벌 경제 위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건강한 가정을 파괴하고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가장들을 노숙자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있다. 곤궁한 삶을 견디다 못해 일가족이 자살을 선택하는 일들이 우리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를 골병들게 하고 있다. 자유를 억압당한 채 기아에 신음하는 북한동포를 위한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논리의 희생물로 관심에서 멀어졌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동포를 도와주고 싶어도, 미국의 승인 없이 도와줄 수 없다. 한민족의 일, 아니 남북한의 일을, 우리 땅에서 우리민족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데 안타깝다. 그렇다보니 남북한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오늘 우리민족은 불안하다. 북한이 핵을 개발했으니, 남한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본 아베정권은 한국경제의 중심인 반도체의 핵심소재에 대한 규제를 하면, 대한민국이 일본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생각해 경제보복을 단행했다. 여기에다 미국 트럼프는 거액의 미군유지비를 내라며, 대한민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종시킨 결과이다.

이런 상황서 대한민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한숨짓고, 원통한 이들은 눈물을 닫으며,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노동현장서 힘없이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 일본 강제징용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우성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와 교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완악해지고, 인정공동체는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이며, 교회이다. 보잘 것 없는 저들, 사람들이 버린 저들을 한국교회가 품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엄동설한만큼이나 차갑기만 하다. 나귀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아 오심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귀타고 오시는 예수님, 평화의 왕으로 받아 드리자
평화와 생명을 파괴하는 세계의 모든 악을 거부하자

가슴 찢는 심정으로 회개 할 때

십자가탑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높게 솟구치고 있는데, 호화로운 교회당은 수십억원 아니 수백억원을 한 번에 삼키고 있는데, 교회는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할 소외된 이웃들의 아우성소리 듣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더 이상 이들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소망도 못주고 있다. 과거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 때만이라도 교회에 나가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이런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데 안타깝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대림절부터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행사와 요란한 이벤트들로 넘쳐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절기를 그냥 다른 때와 똑같이 보내거나,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총동원전도주일행사를 가지며 호화스런 경품과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회개와 금식, 경건과 절제가 사라진 대림절의 모습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대림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교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대림절을 맞아 일부 교회와 연합단체가 우리 사회의 작은 자,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행사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에 한국교회연합을 비롯한 나라사랑운동본부 등의 단체는 사랑의 김장 담그기 나눔 행사를 벌여, 노숙자들과 탈북민들에게 김장을 나누어 주었다. 또한 사랑의 연탄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반면 장로교 H단체는 정기총회가 끝난 다음 총회장들에게 굴비세트를 선물로 돌리고, 총회장 및 총무들을 호텔로 불러 오찬을 가졌다. 또한 임원 및 위원장, 총무들이 참석하는 단합대회도 오는 17일 강릉서 갖는다고 공지했다. 또 워크숍을 오는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필리핀 팔라완에서 갖는다고 한다. 대림절 기간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기독교단체가 해야 할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행사에 들어가는 경비가 누구의 돈이냐는 것이다. 분명 교인들이 드린 헌금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세계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은 존경과 신뢰 대신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교회는 꼴찌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지금 우리 모두는 재를 뒤집어쓰고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회개를 할 때이지 먹고 마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신성을 모독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년도 성탄절은 그 어느 때의 성탄절보다도 추운 성탄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경건하게 예배하는 날이다. 그러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간데없이 흥청망청 놀고 마시는 날로 치부되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조차 세상의 풍조에 편승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성탄절의 경건함을 회복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면서 그리스도의 탄생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성탄시즌이 되면 거리는 온통 온갖 상술과 유흥의 물결로 뒤덮인다. 성탄절을 앞둔 거리는 셀 수 없는 인파로 북적인다.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트리장식이 등장하고, 술집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앳된 아르바이트생들이 술과 안주를 연신 테이블로 실어 나른다. 사람들은 성탄절의 본질을 찾기보다는 술과 유흥을 즐기며 그저 먹고 노는데 몰두해 있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성탄트리는 아기예수를 전기로 고문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까지 든다.

성찬문화 달라져야 한다

길게 늘어선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상점 앞에는 산타 인형이 유혹하듯 춤을 추고 있다. 상점 안에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상품들로 가득 차고, 호화찬란한 장식과 귀청 떨어지는 캐롤로 사람들의 정신을 홀린 후,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장사꾼들의 상술이 점령해 버린 12월 거리의 풍경이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대표적인 유흥가 주변에 위치한 이 교회는 12월이 오기 전부터 성탄 준비로 분주하다. 교회 입구에 커다란 성탄 트리를 장식하는가 하면, 교회 건물 전체를 휘황찬란한 전구의 불빛들이 휘감는다. 성도들은 들뜬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하고 온갖 장식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

하지만 정작 이 교회와 성도들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성탄절이 돼도 그저 성탄예배를 드리고, 연말이 다가오면 주변의 고아원 등에 쌀 한두 포대를 일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전부다. 성탄절 날 교회 안은 찬양과 예배, 기도 소리로 가득차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교회 밖 골목에선 술 취한 취객들의 고함 소리와 그저 먹고 놀고 마시는 데 몰두한 수많은 사람들의 흐느적거림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1년에 한번뿐인 성탄절마저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예수 탄생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세상과 높은 담을 쌓은 교회 안에서 그들만의 잔치, 교회만의 잔치를 즐기는 성도들과 교회들만이 늘어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히 이 대형교회만의 모습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계 곳곳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지지만 ‘생색내기’에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 행사, 사랑의 쌀 나누기, 양로원과 고아원 방문, 성탄트리 점등, 불우 이웃 돕기 등을 통해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고는 있지만, 해당 교회나 단체에만 그 혜택이 매몰되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는 성탄절만큼은 이웃과 함께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이날은 교회에 다니든, 안 다니든 모두가 교회에 모여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축하행사를 가졌다. 오늘 이 같은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유치원에서나 볼 수 있다. 유치원의 원아들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부모와 이웃을 초청한다.

이와는 달리 이름 있는 교회나 목회자들 위주로 여러 번 중복되어 있는 행사는 세력 과시로 보여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뿐, 이 땅에 사랑과 평등을 실현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금년도에도 일부단체는 그 세력을 과시라도 하듯 일간에 광고를 게제하고, 행사 관련자들의 얼굴을 내민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나눔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동역자들에게 몇 푼 던져주고, 도와주었다고 말한다. 이 행사를 위해 들어가는 경비는 어마어마하다.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성탄절

이 경비를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눈다면, 전도의 효과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크게 성장했다.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으며, 해방 후 전쟁과 사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빈민과 노동자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당시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성서의 경제정의는 한마디로 나눔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생활현장이었다. 이곳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찌 보면 예수님의 선교현장서 이탈했다.

분명 오늘 한국교회의 성탄절은 보여주기에 급급한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높은 성탄트리와 형형색색의 장식은 자칫 백화점, 쇼핑거리 등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성탄장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세상에 의해 흐려진 성탄문화를 정화시키고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올바른 길로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외되고 있는 작은 교회나 농어촌지역의 교회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 크리스마스 세태를 걱정한 많은 목회자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모른 채 분위기에 젖어 흥청망청 보내거나 단순한 연례행사쯤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독교의 절기인 크리스마스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로 인해 변질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 아기예수를 가다리자

한 신학자는 이런 세태를 비판하며 “비록 그리스도께서 수천 번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지라도 그대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그대의 영혼은 비참해지리라”고 내뱉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경건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을 말한다. 이들은 앞으로 교회문화를 향유하고 이끌어갈 미래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2천여 년 전처럼 여전히 갈등과 반목이 넘치는 시대를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랑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메마른 형식으로 굳어져 버리고, 우리의 이기적 욕망을 부추기고 내보이는 날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2천여 년 전 ‘아기 예수가 오신 날’은 진정으로 우리가 겸허해져서 많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거나 덜 가진 자들과 나누는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돼야 한다.

서울의 한 목회자는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정의를 파괴하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맘몬의 꿈을 꾼다. 이 꿈은 인간 욕망의 꿈이다. 하나님의 꿈은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꿈이다”면서, “2019년도 성탄절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꿈인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증오가 아닌 사랑을, 승리와 지배가 아닌 희생과 섬김을 몸소 실천하고, 권세 있는 자들과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내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높이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인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이 땅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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