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필 목사.

다사다난 했던 2019년은 역사 속에 묻히고, 희망의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교회, 사회,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우리사회는 보혁갈등으로 인해 진영논리가 명확해졌으며, 교회역시 교회의 분열을 넘어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정치적 갈등이 그대로 교회로 옮겨온 것은 아닌지 한국교회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다 화해분위기로 치닫던 남북관계는 긴장관계로 치달았고, 미국과 북한의 긴장관계는 최고조에 달했다. 북미는 노골적으로 전쟁을 운운한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한국교회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문제를 우리 땅에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외쳐야 할 교회는 로마평화(팍스)를 외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1)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예레미아 23장5-8절)

이 성경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자유인들에게 오시겠다는 약속이다. 노예로 산 사람은 자유와 정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사람은 율법으로 다스려야만 한다. 그것은 남북한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사랑이 메마른 북한은 채찍과 강제적으로 통치한다. 자유의 나라 남한은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하야를 하라고 해도, 자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림을 차려놓고, 고성방가와 곳곳에 오줌과 똥으로 오물을 쌓아 거리의 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서울시민과 교인들은 아무데나 오줌과 똥을 싸는 사람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성숙한 법을 지키는 사람을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다. 또한 교회는 전지전능하신 신을 따르든지, 아니면 신의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은 모기관의 대표를 따르든지, 선택해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정치인과 교회지도자들이 많다. 이들에게 사랑과 정의로 오신 하나님이 필요하겠는가(?) 2019년 한해를 보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숙되지 못한 정치인과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이들이 그렇게도 찬양하던 파쇼정권이 다시 등장해 강압적으로 억눌려야 하지 않을까.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필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25일 자유인으로서 메시야를 기다렸고, 맞이했다. 오전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데 무엇이 두려운가. 그리스도인들이 2019년을 보내고, 2020년도를 맞으면서, 새로운 미래, 새로운 내일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메시야 사상은 한마디로 사랑이며, 정의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본의 경제침략과 북미의 갈등, 미중의 무역 갈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목사들로 인해 국민들은 희망을 잃어버렸다. 새해 2020년도에는 곤궁해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있는 참사랑을 이 땅에서 실현해 보자. 교회에서 짐이 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한해가 되기를 간구한다.

예장 한국총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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