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육체가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넘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령의 소욕이 강하면 강할수록 육의 소욕이 적어지는 것뿐이지 육의 소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가운데 괴로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롬7:19) 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인데, 막상 자신이 해놓은 것을 보면, 그와는 반대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사도 바울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1-23) 선을 행하기 원하는데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며 고백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자신 안에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 모두에게 이 두 가지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악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 굉장한 고통을 느끼곤 합니다. 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의 소욕을 따라 삶을 살 때에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은 그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거듭거듭 일어나는 선한 생각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정욕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고 때때로 넘어지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해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고 성령을 근심되게 한 것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장차 우리는 육체의 몸을 벗어나면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허름하고 비만 오면, 비가 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사는 동안은 낡은 집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 산 아파트에 들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바뀝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육체 가운데 있는 동안은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오는 괴로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되지만 그것이 육체 가운데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체의 몸을 벗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 육체의 몸에서 건져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새 몸을 입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탄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지만 그 때에는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미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로부터 해방 받을 그 날까지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며 따르고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나무숲전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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