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3) 성경만이 최종 권위를 가진다

스위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근간으로 성취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츠빙글리가 선도하였고, 외콜람파디우스, 파렐, 불링거, 칼빈, 삐에르 비레, 테오도르 베자가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성경적인 제도와 윤리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였다. 스위스 동맹이 강화되면서, 취리히에서 츠빙글리가 선포한 복음이 주변에 확산되었다. 베른과 바젤을 거쳐서 마침내 제네바에서 칼빈이 혁신적으로 성취하였다. 스위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도시전체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고, 교회제도와 예배를 크게 변화시켰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인정한다고 말하였지만, 정작 그들은 교황과 종교회의에 더 의존하였다. 인간의 권위를 더 높이고 있었기에, 루터와 칼빈은 교황이야말로 거짓 교사라고 정면에서 비판하였다. 인문주의에서 토대를 닦은 후에, 종교개혁자들은 라틴어 번역성경이 아니라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어성경을 파고 들어가서 새로운 신학사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을 배출한 대학교에서는 대부분 15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라는 토양이 구축되어 있었다. 성경에 대한 연구에서 획기적으로 중세와는 다른 흐름을 만들었지만, 이들 두 가지 흐름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하던 신학적인 사상들은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일반 시민들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려는 대안이자 위로였다. 성경의 내용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고민하던 문제들을 다룬 것이고, 일상생활의 고뇌와 아픔을 해결해 주는 해답들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강조, 섭리와 예정, 예배와 설교를 중요시하는 것들은 모두 다 생활의 현장에서 일반 성도들이 해답을 찾지 못하고 혼란을 겪던 것들이었다.

인문주의 언어학자들이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 스콜라주의와 논쟁을 시작하였고, 이것을 계승한 종교개혁자들이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제시했다. 인문주의자들은 “근본으로 돌아가라” (ad fontes)라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헬라어 성경본문의 정확한 번역에 집중하였다가, 점차 그 의미와 해석으로 확산하였다. 고전 연구를 중요시하는 기독교 인문주의(Christian humanism)자들로 확산되어지면서,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구호에 시인, 문필가, 화가, 건축가, 어학자, 고고학자, 철학자들이 공감했다. 지성적인 기독교 철학, 윤리와 도덕적 갱신운동에서 영향을 받아서 성장한 후에, 중세 로마 스콜라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기독교 신학사상을 정착시켰다. 15세기에 이탈리아로부터 확산되어나간 기독교 인문주의는 신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된 원서들을 읽고서 수사학을 발전시키는 탁월한 어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정신은 유럽인들에게 익숙했던 라틴어를 넘어서서, 거의 칠백 년 동안 잊혀져 있었던 고전 언어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 등 인문주의 학자들과 초기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준 많은 신학자는 로마 가톨릭 신부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6-1457)였다. 루터가 최초로 독일어 성경번역을 시도한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가 신구약 완역본을 출간해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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