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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국교회여! 세상의 조롱거리는 되지 말라”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언어와 행동 선교와 전도에 방해만 된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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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22  10: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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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하나님 앞에 선 이웃

요즘 회자되는 말이 있다. 연합단체의 대표회장이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하나님 까불면 000한테 죽어”라는 막말을 한 이후, 세간에서는 “000대표회장이 하나님을 죽여, 대한민국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이 대표회장의 막말은 신성을 모독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000 대표회장의 막말을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규정한 단체에서 악용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 단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신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제목의 전단지를 곳곳에서 뿌려, 이 대표회장의 막말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고 있다. 이 단체는 전단지를 2인 1인조가 되어 돌리며, 한 명은 전단지를 주고, 한 명은 전단지를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악용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단지 내용이 무엇인가를 보는 순간에 사진을 찍고, ‘됐어’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목회자, 특히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한다는 애기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교회를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국교회를 비판하기에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데 안타깝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 내부에서 조차 이 대표회장의 막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진영싸움의 중심에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다시 한 번 들여다가 보게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러한 막말은 사람답게 살게 해달고 아우성치며,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땅의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가져다가 주었다는데 참담하다. 성서는 희망 없는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나라를 벌였다는 것을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서 죽는 하나님이라면, 연약한 하나님을 누가 믿겠는가. 그래서 한 목회자는 강단에서 “이 대표회장이 믿는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르다”고 설파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강한 하나님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대표회장이 주관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인사들은 막말을 쏟아내는 아이콘이 됐다. 전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 벌기 위해서 자원한 매춘부”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중들을 향해 내 뱉었다. 또한 권사라는 사람은 국민들이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일본 아베님 사죄를 드린다”라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분명 대한민국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런 막말을 내뱉는 인사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며, 목사라는데 안타깝다. 이들에게서 선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을 향해 성서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비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학자들은 “신은죽지 않았다”고 니체의 말에 항변한다. 이렇듯 신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는 사실. 구약성서의 출애굽은 희망 없는 땅의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교회가 오늘날 성서에서 이탈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어야 한다”
폭력과 편견이 판치는 세상을 종식시키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 나라 실현하자


한국의 하나님은 누가 죽였나

기독교의 가치관인 생명의 비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사건, 어둠을 뚫고 한줄기의 빛으로 세상에 희망을 준 기독교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신’은 죽지 않았다는 진리를 설파하며, 낮은 곳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찾았다. 이번 주일(12월12일)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 주현절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폭력과 편견이 판치는 세상을 향해 회개를 외치고, 하나님이 지접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강조했다.

오늘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의 막말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결과가 빚어낸 참사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른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어려워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내뱉는다. 이것이 성서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모른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막말은 괴변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에 진정 하나님이 존재하겠는가?

이들은 ‘하나님을 죽인 살인자’이다. 일제 36년의 아픔도 모르고, 오로지 기득권에 취해 있다. 고난을 딛고, 민주화된 나라,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누렸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들은 이웃의 아픔을 모른다. 모든 종교는 자신의 수양과 지도자들의 수양을 말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이웃을 향해 있다. 이들은 분명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성서에서 이탈한 불신자보다도 못한 가롯 유다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로 자녀들을 차디찬 바다에 수장시키고,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 죽임을 당한 학생 부모들의 아우성소리를 외면했다. 또한 1년에 12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로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해도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눈물이 메마른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눈에 하나님이 보일 리가 없다.

이들에게는 하늘높이 솟은 첨탑은 보여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희망 없는 땅의 사람을 볼 수 있는 맑은 눈이 없다. 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아한 귀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아니 예수님을 만나려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이 바로 이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나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종교주의와 국가주의서 벗어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그의 교육과 교훈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없기 때문에, 교회와 세상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현장’서 이탈한 결과,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주권국가이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 미국 대통령 트럼프 개인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주권국가인 이란의 장군을 암살했다. 이런 나라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 할 줄 안다. 이것은 영적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영적이란 이름으로 교인들을 얼마나 농락했는가.

고린도전서 12장 12절과 13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1)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년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 차별 없는 나라,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나라, 남북한민족이 전쟁 없이 평화로운 나라,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다.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는 예루살렘 도성에 생수가 터져 절반은 동쪽으로 절반은 서쪽으로 흐른다고 예언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넘는 하나님나라를 꿈 꿨다. 예루살렘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를 말하고 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슥 12:8-11)

예루살렘은 새로운 질서의 발원지인 동시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민족이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나라, 하나님이 예루살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밖 세계에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만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을 열망하며,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영미 영향 받은 한국교회 매우 배타적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한 하나님, 같은 성경과 찬송가를 보면서도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오늘 한국교회는 다툼뿐이다. 무엇보다도 분열과 다툼을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은 소송비용으로 모두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 소송비용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는 “오늘 한국교회가 변호사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강남의 대형교회는 교회내분으로 인해 100여건의 소송이 걸렸다. 보다 못한 법원은 당회장에 변호사를 파송했다. 이것은 연합기관인 한기총도, 대교단인 감리교단도, 이런 아픔을 겪었다. 다툼을 겪는 동안 교인들은 풍비박산 흩어지고, 교회는 작은 교회로 전락했다. 이런 일들이 전국 교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또한 교회분열 현장에는 여지없이 용역들이 동원된다는 사실 앞에 교회지도자들은 무엇으로 해명 할 것인지. 이로 인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전도와 선교의 문도 닫혔다. 오늘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분열과 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분열주의를 치유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분열된 상황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노래 할 수 없다. 또한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에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영미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매우 배타적이며, 종교성이 강하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리와 원리주의를 내세워, 이웃종교와 이웃교단, 이웃교회를 배척한다. 이웃의 아픔을 모른다. 국민의 아픔을 모른다. 그렇다보니 곤궁한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하나님 없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을 내세워 끼리끼리 모여 싸우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분파도 만든다. 이런 상태로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자기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정당의 대표가 조계종에 육포를 보내고, 이웃종교의 행사에 참여해서 혼자서 돌출행동을 한다. 언론들은 이를 집중보도하며, 비난하기에 바쁘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이런 모습이 언론을 통해 비쳐질 때마다 한국교회는 국민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는 사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서 치유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나 먼저 잘못을 고쳐야 한다. 한마디로 자기 안에서 치유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민족을 위해 먼저 자기분열을 치유하자

오늘 대형교회의 목사들 중 일부는 “고위공직자의 말이다”면서, “오늘 대한민국이 큰 일 났다. 좌파세력이 나라를 정복하고, 북한 김정은에게 나라를 통째로 바치려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리고서는 이를 하늘의 계시로 착각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에 의해서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이다. 그런데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좌파, 빨갱이, 용공으로 매도한다. 이것은 분노의 감정이 만들어낸 ‘유언비어이다. 국민을 향한 저주이며, 협박이다.

그리스도인은 내일을 위해, 아니 국민을 위해, 민족을 위해 자기분열을 치유해야 한다. 미래를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은총인 복음이다. 그렇다 교회는 연약한자, 유리방황하는 떠돌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계약직 노동자,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고난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와 노무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분열된 나라, 분단된 나라를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 드려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국가주의에 빠져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데 중심에 서 있다는데 안타깝다. 모두가 함께 죽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지렁이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행동하셨다. 이들을 구원하셨다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는 깨닫자. 그리고 교회의 화합과 연합, 그리고 일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하자.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넘어 한민족과 세계민족을 향한 구원의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대한민국의 하나님이다. 또한 북한의 하나님이며,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 할 줄 아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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