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오늘날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마을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에 농촌마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빌리면 농촌마을 주민의 텃세 때문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같은 알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온촌도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농촌마을도 사람사는 세상이며, 도시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서로 마음을 열고 너와 그를 받아드리면 못 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성서는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리라고 했다. 농촌마을에 지혜로운 노인이 한 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여행객이 나타나 이 마을이 살기가 어떤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다가와 “이 마을은 살기에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노인은 그 여행객을 바라보며 “어떤 마을에서 오셨습니까? 당신의 마을은 살기에 어떻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여행객은 “제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협력하지 않고 살기에 좋지 않은 마을입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노인은 “이 마을도 당신이 사는 마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그 여행객은 조용히 말없이 떠났다.

잠시 후 차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또 노인을 향해 똑 같은 질문을 했다. 노인은 “어떤 마을에서 오셨습니까? 그곳은 살기에 어떻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는 “내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가깝게 지냅니다. 서로 도와주고 어디를 가나 서로 따뜻하게 인사를 나눕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미소를 보내며 “이 마을과 아주 비슷하군요. 이 마을도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 순간 노인의 손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왜 첫째 사람이 물었을 때는 마을이 살기에 아주 고약한 곳이라고 하시더니, 저 사람에게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노인은 웃으며 “사람은 어디를 가나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법이란다. 그 <마음>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도 하고 고약한 곳을 만들기도 하지”라고 대답했다.

이 두 이야기는 많은 교훈을 던져 준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코로나19에 공포 속에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서로 봉사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행복은 그 <마음>에 따라 달라지고 ㅁ아름다워 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대구, 경북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 위로의 <마음>으로 이들을 안아주고 이들의 아픈 <마음>이 빨리 치료될 수 있도록 중보 기도자가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들여야만, 이웃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야 어디에고 정착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코로나19'로 고통받은 대한민국의 국민들, 의료진, 정부 밎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고통받는 대구•경북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다.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한다.

“벼랑 위에 서 있는 나무가 쓰러지지 않음은 그 밑에 강한 뿌리를 내리고 나무의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음>의 구심점이 있어야 행동에 통일성이 생기며 주위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