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요한이 전하는 수가성 우물가의 이야기(요 4:27-38). 제자들은 마을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갔고, 예수께서는 마침 우물에 물 길러 나온 여인과 대화를 나눈다. 잠시 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고, 먹을 것을 구한 제자들이 돌아온다. 조금 전 우물가의 여인과 마실 물을 중심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지금은 제자들과 먹을 것을 중심으로 생명의 양식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 이 장면에서 우물가의 여인은 이미 예수를 통해 진리를 깨달은 반면, 제자들은 아직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다. 제자들은 우물가의 여인보다 확실히 아둔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추수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데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8)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놀라운 장면이 벌어진다. 여인에게서 예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자기 동네에서 머무시기를 청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경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말에 동네사람들이 크게 반응한걸 보면 대단한 신망을 지닌 여인이었음에 분명하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인이 전한 복음의 소식이 이처럼 놀라운 결실을 맺다니! 이 장면은 앞의 38절과 오버랩 된다. 뿌리기는 다른 사람이 했고, 제자들은 단지 결실을 거두는 데 참여한 자들인 것이다. 수고한 바가 없는데도 결실을 거둬들이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다”(요 4:36b). 이는 예수님의 경제학이기도 하다. 세상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른 데서 온갖 부조리와 불신과 불평등이 만연한다. 물론 예수께서 복음 활동에 대해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보다 자본이 대접받는다. 노동은 항시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니 노동을 존중하지도 않고, 노동자가 존중받지도 못한다. 고단하게 산 여인이 뿌린 복음의 결실을 수고하지 않은 제자들이 거둔다는 것, 생각해 보면 공평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세상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꾸려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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