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세계로부터 대한민국은 나름대로 ‘코로나 19’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는 준비된 지도자와 의료진이 있고, 정부를 믿고 따르는 백성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세계가 방심하고 있다가 재앙을 드리우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안타깝다 못해 참담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나라들은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남반부 국가의 국민들이 동경하던 국가들이다. 미국은 일본과 유럽의 국가들에 대해서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받는 나라들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데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은 ‘코로나19’바이러스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세계는 대한민국의 ‘코로나19’바이러스 대처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12일)을 맞아 세계적 재앙인 ‘코로나19’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갖게 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의 재앙은 참사랑을 잃어버린 세계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는 아닌지. ‘코로나19’바이러스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부활의 아침에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은 모두가 여자였다. 이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조건 없이 사랑했다. 이들 여인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조건 없이 실천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죽은 자를 아무렇게 버리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서 장사를 지냈다. 오늘 미국이나, 유럽에서 ‘코로나19’로 죽음을 맞이한 주검에 대해서 아무렇게 방치하는 모습을 본다. 자녀가 부모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참된 사랑은 죽음도 삶의 일부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시몬의 어머니 등의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했으나, 그의 인격을 사랑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영화를 위해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 ‘코로나19’바이러스는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킨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만들어낸 재앙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대구광역시는 ‘메디시티’로 만들었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은 의료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철저하게 이용했다. 대구적십자병원과 진주의료원은 적자난다는 이유로 폐쇄시켰던 사실. 이것은 생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한 것이다. 의료민영화는 의료서비스를 한마디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참사랑, 조건 없는 사랑에서 이탈한 것이다. 생명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생각한 결과가 바로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만들어 냈다.

미국과 유럽은 의료시스템이 붕괴 됐다. 이런 상황서 미국은 동맹이며, 혈맹인 대한민국으로부터 방위비를 더 받아내려고 안간 힘을 쓴다. 유럽은 의료시스템을 국영화시켜 의료인들을 국가의 틀에 가두어 버렸다. 그 결과 유럽의 의사들은 세계적 재앙인 ‘코로나19’바이러스 대처에 미온적이다. 나라가 가만히 있어도 급여를 주는데 적극적으로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치료 할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세계가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코로나19’바이러스 재앙에 대처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의료시스템 붕괴는 당연한 것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 전염병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국가는 다국적기업이 진단키트 만들기를 기다렸다가 큰 재앙을 불러왔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참사랑과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가 빚어낸 참사이다.

이 틈을 이용해서 대한민국은 진단키트를 만들었고, 선제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격도 상승됐다. 일본은 의료선진국을 자랑하다가 큰 코를 닥쳤다. 겸손한 지도자와 준비된 의료인, 이들을 믿고 따르는 백성이 있기에 ‘코로나19’바이러스에 선제적으로 대처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참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다. 참사랑이 죽음의 권세를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이 부활의 계절에 깨닫자. 즉 부활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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