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이 독주하는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게 될까.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친 동성애 단체들이 차별금지법을 제21대 국회에 다시 입법 제정하려는 발빠른 움직임 속에 교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권에 있어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는 이 법은 지난 14년간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독교계의 반대가 그 만큼 거세기도 했지만 여론 수렴 과정에서 국민적인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법의 핵심은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이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들의 법적 권한은 동성결혼의 법제화로까지 연결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래서 ‘천부인권’이라 불린다. 문제는 동성애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람다운 권리냐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그 행위를 ‘죄악’이라 딱 잘라 규정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계는 차별금지법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과연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성별이나 장애 등 다른 인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하여야 할 문제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남녀 간 성차별 문제의 경우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 스스로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이것을 동일한 인권의 시각으로 보지 않을뿐더러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경우 다른 차별과 똑같이 제재하는 법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차별금지사유를 한꺼번에 포괄하여 단일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게 되면 차별행위에 대한 제재의 수준과 방식이 일괄적으로 동일하게 정해지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인권위가 제안하려는 차별금지법안을 살펴 볼 때 그 첫 번째 의도는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교계는 두 번째 숨은 의도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이 현행 헌법이나 인권위법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인권위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 만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계 지도층과 연합단체들 조차도 차별금지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왜 기독교가 반대에 목을 거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저 인권 문제를 논할 때 차별은 좋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헌법상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 즉 신앙의 자유 대신 선교받지 않을 자유, 설교를 거부할 자유, 성경이 말하는 죄를 죄라 해서는 안 되는 역 자유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때가 되면 한국교회는 섬 안에 고립된 채 종교로서의 명맥과 정체성만을 겨우 지탱하고 연명해야 하는 단체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차별금지법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인간이 차별받지 않고 살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기독교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성소수자 문제만 빼면 다른 것은 문제가 없지 않은가”라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현실타협론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에 내리는 명약 처방이라기보다 오히려 매우 위험한 소리로 들린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여지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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