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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선교현장 그리스도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신종바이러스감염증 정국서 한국교회의 선교현장은 어디인가?(3)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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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2  10: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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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선교현장은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이들을 섬겨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 사건발생 초기부터 사고 현지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돕는 많은 봉사활동을 펼친 한국교회.)

교회의 선교현장은 어디인가(?)

예수님의 ‘삶의 현장’, ‘선교의 현장’은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 선교의 현장은 어디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갇혀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적 업적주의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진보적인 교단들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이념적 스팩트럼을 가진 네오콘들로 변질돼, 교회마다 강대국의 권력에 굴종하며, 부자들의 눈물을 닫아주기에 바쁘다.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맘몬을 노래하며, 바벨탑을 쌓기에 바쁘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이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가치인 사랑과 생명의 복음은 실종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수십억 아니 수백억원을 집어삼켜버린 교회당의 건물, 전국 방방곡곡에 수 없이 불빛을 밝히는 십자가 탑에 그리스도는 있을까(?)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있을까(?) 예수님은 이렇게 보잘 곳 없는 데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는데,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성서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목회자와 교인들은 교회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이는 분명 성서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렇다면 그 곳은 어디인가. 맘몬과 바벨, 탐욕으로 가득 찬 눈으로 그곳을 감지 할 수 없다.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청아한 귀로 하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오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자영업자,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 서울역을 배회하는 노숙자, 일용직 근로자, 특수직 노동자, 도시의 빈민촌에서 빈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의 아우성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오늘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이런 곳에 오시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소리 없이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감지해야 한다. 올바른 교회로서,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있는 곳, 코로나19로 인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굶주린 자, 목마른 자, 집 없는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서울역을 배회하는 노숙자, 옥에 갇힌 자 등등이 있는 곳을 선교의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가 가는 곳에 교회도 가야 한다. 이것이 성서가 교육하는 선교의 현장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들에 그대로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을까. 5만여 한국교회와 10만 목회자가 오늘의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은 미국의 어느 여자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어디오실 것”인가에 대해서 말했다. 그녀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백악관도 아니요, 부유한 백인들의 교회도 아니요, 그분은 할렘가, 가난과 범죄가 들끓고 인간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그곳에 오신다고 말했다. 킹 부인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선교현장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죄인들이 있는 곳, 아무런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자기십자가지고 고통 받는 이웃과 하나님나라운동 벌이자”
“무거운 짐 지고 신음하는 사람을 그리스도 섬기듯 섬기자”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가자

예수님은 이곳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로마식민지 아래서 신음하는 백성, 정결법과 안식일법을 지키지 못하는 천박한 이웃, 창녀, 과부, 고아, 가난한 자, 갇힌 자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길이라고 가르치고 교훈했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의 선교현장과는 전혀 다르다는데 안타깝다.

문제는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도 많고, 목회자만 10만명, 신학교도 곳곳에 세워져 목사후보생들을 끊임없이 길러내는데, 교인도 1천2백만명인데, 교회다운 교회, 교인다운 교인이 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건강한 교회를 해 보겠다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현장에 뛰어든 목회자들도,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두가 ‘예수를 팔아먹는 삯군’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한국교회 곳곳을 바라보면,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악취만 풍긴다. 돈!돈!돈! 악마의 금전소리만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박재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1988년, 도서출판 천지)에서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버림받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그들을 섬겨야 한다”면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받은 작은 달란트를 그들에게 내 놓은 때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삶이 우리에게 허락된다”고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자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져 교인 대부분이 ‘네오콘화’되어 가는 상황서, 하나님나라운동은 묘연하기만 하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데도, 일부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돈 타령만 한다. 영세업자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서, 교회는 왜 재난지원금을 안주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내세워 국가가 요구하는 대면예배 금지에 정면 도전한다.

이는 분명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정교분리를 주장한 존 로크는 “국가가 신앙고백을 요구하면, 종교는 이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국가가 대면예배 자제를 요청하면,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인간세상의 혼란과 고통에 대해서 교회도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애기다. 헌데 인간세상의 혼란과 고통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데 안타깝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질서는 파괴되고, 인간세상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교회의 신뢰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선교의 경쟁력 역시 이와 함께 상실되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서 이탈했다. 모두가 성령을 도매금으로 방매하고, 복음을 헐값으로 뿌리고 있다. 모두가 교회성장론에 갇혀, 사회제도와 경제제도, 그리고 정치제도 하에서 신음하는 이웃, 버림받은 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선교현장 돼야

그러면서도 목회자와 교인들은 하나님의 령, ’성령‘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성령을 교회의 복 방망이로 생각한다. 성령은 부흥사와 교회성장론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교회성장에 골몰하는 일부 교회는 이웃교회의 교인을 데려오는 대가로 교인들의 이름 아래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별을 달아주기도 했다. 한창 교회성장론이 교회 간에 경쟁적으로 일어났을 때는, 이웃교회의 교인을 데려온 교인에게 금붙이를 부상으로 주었다. 해외여행 상품을 걸어놓고, 경쟁적으로 전도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교회성장에도 여지없이 맘몬이 등장했다. 따라서 교회성장론자들이 교회의 신학과 리더십을 장악하면서, 정통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신학, 진보적인 신학은 점차 그 힘을 잃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그렇다보니 교단과 단체는 돈의 위력이 크게 작용하게 됐다. 교회 내에서는 돈이 있어야 장로, 권사, 안수집사가 되고, 교단에서는 돈이 있어야 교단장과 노회장, 감독, 지방회장이 된다. 연합단체장도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세습도, 큰 교회 부임도 동이 있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덕목과 신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맘몬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심지어 신학교육현장도 이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종교신학자들이 신학대학교 강단서 추방되는 일도 벌어졌다. 성장론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한국신학의 중요한 산물이었던 민중교회들 마저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교권주의자들에 의해서 장로교단은 끝없이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어느 목사에 의해서 신이 죽임을 당하면서, 이제 대한민국에는 ‘신’이 없다. 이 목사는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나라 갈 수 없다“고 교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교회가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화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목회자가 있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 목회자 모두가 이념적 스팩트럼 네오콘에 빠져 강대국의 권력을 섬기며, 이념적 갈등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하나님나라는 목회자를 매개로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가는 곳이다. 목회자를 매개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함께하고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인간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지금 고통당하고 굶주리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애기다. 인간 모두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를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하나님께 충성하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목회자와 교회에 충성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하나님나라, 헌금의 액수가 믿음의 척도임을 교육해 왔고, 교육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간수하기만 하면, 큰 잘못을 면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교인들이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는 애기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잊은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나라운동을 위한 행동을 거부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불의 앞에 침묵하며,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감지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1달란트를 받은 종이 나쁜 짓을 해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안했기 때문에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그렇다 오늘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자기 안에 갇혀, 1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보다도, 교회와 자기 자신에게 충성한다. 자신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지키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은 이렇게 교육했고, 교인들은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 신종 바이러스감염증 정국서 한국교회 일부가 취한 행동은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붙잡고 지키는 보수주의에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교육 받은 진리와 신앙만을 지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자신만을 위한 재물은 결국 하나님나라 재물을 잃고 만다. 하나님이 준 달란트를 가족을 위해 다 허비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가족을 잃는다. 교리와 전통 신앙만을 붙잡고, 안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가 과거에 머물러 변화되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그리스도의 이름아래 세워진 교회들은 진리와 신앙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 할 수 없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삶이 고달프고 위험하더라도, 용기 있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버림받은 사람, 천박한 사람,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껍데기를 벗어버려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하는 종교인 동시에 행동하는 종교이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믿음과 은혜는 1달란트를 받은 종과 다르지 않다. 1달란트를 꽁꽁 싸서 땅에 묻는 것과 같다. 코로나19 정국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외면하면, 한국교회는 크게 손해를 볼 것이다. 선교의 경쟁력도 상실 할 것이다. 이미 상실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강도만난 사람을 돕지 않고, 외면하고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자유,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웃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행동해야 한다. 이 아우성을 듣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제라도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와 작은교회들의 신음소리, 노동자들의 외침, 계약노동자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열어야 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리스도를 섬기듯 그들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아낌없이 내 놓아야 한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 풍성해진다. 교회도 선교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풍성해진다.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삶이 보장된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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