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아론의 가슴에 판결 흉패가 있고 우림(םירוא)과 둠밈(םימת)이 그 안에 들어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물체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29절). 구약에서 우림과 둠밈은 함께 4 차례(출 28:30, 레 8:8, 스 2:63//느 7:65), 전자만 단독으로 2 차례(민 27:21, 삼상 28:6), 선후가 바뀐 예도 한 차례 보인다(신 33:8). 이를 규명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우림과 둠밈이 장엄의 복수(plurales intensivus)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동어반복을 피하는 이중적 묘사(hendiadys)라는 점이다. 둘 다 본래의 의미를 강화하는 데 활용되는 수사법이다.

우림은 ‘불꽃, 빛’(רוא)의 복수이며, 둠밈은 ‘완전, 진실, 순수’(םת)의 복수이다. 문자적으로는 ‘빛들과 진실들’이 되어 어딘지 어색하고 뭔지 애매하다. 히브리어 복수는 양적 다수에 한정하지 않고 탁월성, 위엄성, 강렬함, 추상성, 확장성 등을 복수형태로 담아 그 의미를 강조한다. 예컨대 하나님(םיהלא)은 신성의 위엄, 하늘(םימשׁ)과 용들(םינינת)은 위대함과 강렬함, 물(םימ)은 확장성, 구원(תועושׁי)은 추상성을 반영한 것이다.<Aaron Ember, "The Pluralis Intensivus in Hebrew." The American Journal of Semitic Languages and Literatures 21.4 (July 1905): 195-231.> 한자 문화권에서 뛰어난 군주를 대왕(大王), 큰 땅을 대륙(大陸), 큰 바다를 대양(大洋)으로 표기하여 탁월함과 광대한 점을 강조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우림과 둠밈은 단순 복수가 아니다. 신적 권위와 신비로운 계시를 보여주는 수사법으로서 정관사와 함께 복수형을 취한 것이다.

한편 우림과 둠밈은 동의어를 활용한 중언법(tautology)에 속한다. <70인역>과 불가타는 삼상 14:41에서 우림과 둠밈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늘 저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 허물이 나에게나 나의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새번역 각주 참조). 요세푸스는 위 구절 때문인지 우림과 둠밈을 긍정과 부정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물건으로 기술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두 개의 주사위 또는 제비뽑기로 인식되어 왔다. <강승일, “우림과 둠밈, 에봇, 그리고 언약궤: 제사장의 점술 도구들,” 「구약논단」 18.2 (2012): 112-135.> 우림과 둠밈은 ‘혼돈과 공허,’ ‘형상과 모양’처럼 둘을 뜻하기보다는 동어반복을 피하며 하나를 극대화시키는 수사법이다. 실제 우림만 언급된 경우가 있고(민 27:21, 삼상 28:6) 둠밈이 먼저 나온 예를(신 33:8) 기억한다면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림과 둠밈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70인역>은 ‘계시와 진리’(dh,lwsij avlh,qeia), 제롬은 ‘완전과 교훈’(perfectio et doctrina), 불가타는 ‘교훈과 진리’(doctrina et veritas), 루터는 ‘빛과 공의’로 번역하지만 앞에서 논의한 대로 단일한 의미를 살려내지 못한다. <William Muss-Arnolt, "The Urim and Thummim: A Suggestion as to Their Original Nature and Significance," The American Journal of Semitic Languages and Literatures 16.4 (July, 1900): 193-224.> 차라리 우림과 둠밈의 히브리 음역을 고유명사로 취하는 것이 낫다. 굳이 그 본디 중언법의 의미를 살려내자면 ‘완벽한 빛’이라고 옮길 수 있다. 이사야는 야웨의 날에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고 선포한다. 제사장의 가슴에 붙인 판결 흉패가 진리를 계시하듯 야웨의 날 모든 것은 명백해진다. 완벽한 빛, 곧 해보다 일곱 배 밝은 빛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투과하여 마침내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우림과 둠밈은 아론의 가슴에 붙였다. 본문은 “가슴(בל) 위에 두라”며 29-30절에 세 차례나 반복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판결은 머리의 이성과 논리,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완벽한 빛’이 투영되는 가슴, 곧 마음과 정신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우림과 둠밈을 갖춘 제사장의 출현을 기다린다(스 2:63, 느 7:65). 하나님은 ‘완벽한 빛’이기에 그 앞에서 아무도 무엇도 숨길 수 없다. 오직 진실만 버텨낼 뿐이다. 우림과 둠밈을 제사장의 예복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스라엘은 항상 야웨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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