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라는 한 극우주의 자에 의하여 약76명이란 어린 생명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가 “극우민족주의자이며”,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 자처했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믿음 있는 한 사람은 이익에만 관심 있는 10만명의 힘과 맞먹는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는데,(출처 = 국민일보)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믿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중세기 남부 프랑스, 북부 스페인, 북부 이탈리아에서 “알비파(Albigenses) 혹은 카타리파(Carthari)” 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직자와 순례자의 부도덕, 성자와 형상의 경배를 폭로하고, 성직자와 그들의 주장을 완전히 거부하고, 교회의 상태를 비평하고, 로마 교회의 주장을 반대하고, 주로 성경에 의지하고, 사도시대의 단순한 교규를 지키기를 힘썼고, 자기 부정의 생활을 하며, 도덕의 순결성을 강조했으며, 이들은 실로 중세기에 있어서 엄격한 성경 중심파 였다. 1167년에는 남부 프랑스의 대부분의 인구를 포섭하고, 1200년에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었다. 1208년에 ‘이노센트’ 3세가 박멸을 명령함에 따라 역사에서 보기 드문 피 흘리는 학살이 벌어졌다. 마을마다 군대가 들어와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주민들을 학살하였으며, 1229년에 설립된 종교 재판에 의하여 100여 년 만에 알비파는 전멸되고 말았다.

또한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덴스파(Waldenses)가 있었는데, 이는 남부 프랑스에 있는 ‘리용’의 부자 상인이 “피터 발도는(Peter Waldo, 1176-1217)”에 의해 이끌어졌다. 그들은 그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돌아다니며 전도했고, 성직자의 횡령과 낭비를 반대하고, 성직자만이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부인하고, 죽은 자가 연옥에 가도록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것을 반대하고, 성경을 신앙과 생명을 위한 유일한 법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전파로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는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교황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음으로 1184년에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였다. 발도는 점점 무자비한 종교 재판의 형벌을 받아 터린(Turin)의 서남쪽 알프스 계곡에만 남게 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개혁주의’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수많은 자들이 있었다. (참고: 교회사)

그러나 작금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순교적 봉사(殉敎的 奉仕)의 외침들은 성횡하며, 개혁의 외침들이 대한민국에도 있기는 하나 그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아픈 역사 속에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범죄행위에 동조, 옹호 내지는 묵인으로 방조자의 자리에서, 오직 출세의 넓은 길만을 달려온 이들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김없이 믿음, 보수주의, 개혁주의 등을 외치면서 이익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2011년 ‘노르웨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하기보다는, 우리에게도 볼 수 있는 현상임을 주지(周知)하면서, 예수님께서 구속을 성취하신 복을 누리도록, 혼돈 속으로 몰아가는 어리석음은 버리고, 유 무형의 그 어떠한 형태의 거짓, 선동, 테러, 폭력 등이 발생 되지 않도록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수구적’이든 ‘개혁적’이든 간에 성도(聖徒)로써의 진정성 있는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자.

좁은 문(門)으로 들1000000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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