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김양호)가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 각하결정은 국민들에게 이 나라의 재판부가 일본을 대변하는 법원인가를 착각하게 만든다.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나 있을 법한 판결이 주권국가인 대한민국 법원에서 일어났다는데 부끄럽다. 참담하다. 무엇으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의 결정을 이해해야 할지 대부분의 국민은 난감해 한다. 일제하에서 고난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고서는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의식 있는 국민들의 생각이다.

분명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국이다. 용서 할 수도 없고, 36년의 고난을 잊을 수도 없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심에서 패소한 이후 밝힌 것과 같이 “국민을 보호할 줄 모르는 정부와 국가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 가관인 것은 이번 판결을 두고 “소신껏 판결했다”고 외치는 일부 한국교회 목회자의 모습이다. 이들을 향해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 목사는 한국교회의 목사가 아니다. “고난당한 국민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희망을 저버리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묻는다.

칭찬할 것이 없어서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한 것에 “잘 됐다”는 논평은 무엇인가. 이 논평을 낸 한국교회언론회를 이끄는 목사는 일제하 만주에 독립군이 없었다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부정한 인사이다. 이런 목사가 일제하에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한국교회 목사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반민족적인 인사이다.

일본 언론이나, 일본 우익인사들이 지껄이는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것도 논평이라고 지껄이며,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돌렸다는데 한마디로 참담하다. 고난당하는 민족의 아픔을 잊어버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힘없는 백성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 말 한마디도 못한 거짓 목사이며, 거짓 선지자이다. 예언자적인 사명을 망각했다. 일제 치하에서 빼앗긴 것들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및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일본에 끌려가 강제징용 피해자와 시궁창보다도 못한 삶을 산 소녀들이 무엇으로 보상을 받았다는 주장인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해도 이해가 안 된다.

친일적인 목사들은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한다.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이 땅의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녀들은 해방 76년이 지난 오늘도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친일적인 목사와 장로는 고난당한 백성이 하늘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해도 침묵한다. 이들은 성령을 몰각하고, 예수를 팔아넘긴 바리새인이다.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위선자이며,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를 부르짖는 가짜 평화주의자이다.

이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시험에 빠진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 남을 비판한다. 이웃의 고난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함께 슬퍼 할 줄도 모른다. 매사 부정적이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 하려고 한다. 혼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친다.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신실하신 하나님이 고난당한 민족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 이런 희망을 주는 자가 바로 예수의 길,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는 일제와 군사독재정권으로 돌아가려는 자와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대망하는 자로 나누어져 있다. 전자는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이를 덮으려고 급급해 한다.

목사여! 그리스도인이여!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새로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또한 힘겹게 아리랑고개를 넘은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 땅의 소려들의 아우성을 듣고, 함께 소리치는 용기를 갖자.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탄식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는 불의한 친일파와 돈만을 탐하는 모리배, 가짜 성직자들만 판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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