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짧고 가는 문장이 두 줄로 포개져 있었다
읽을 수 있을까, 이 비틀거리는
새의 말을 쓸쓸한 발톱이 휘갈겨 쓴
마음의 잔해들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갔다
가다 멈추고 공원 근처
가까운 편의점에서 생수와 빵을 샀다
벚나무 아래 나무의자에는 녹지 않은 눈이 가득했다
녹을 수 없는 눈과
녹지 않는 눈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엽서를 꺼내 그 두 줄의 문장에서

▲ 문 현 미 시인

우체국이라는 단어가 먼 추억처럼 다가온다. 그립고 정겨운, 슬프고 애틋한 사연을 담은 편지들이 가득한 그곳. 누군가에게 손글씨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들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갔던 그곳. 이제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 되었다. 집앞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빨간 우체통은 거의 사라지고 그 대신 잿빛 우편함들이 아파트 입구에 빼곡하게 들어섰다.

오랜만에 <우체국>이라는 시의 제목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시의 첫 행에서“엽서를 쓰고 우표를 붙였다”는 아날로그 방식의 의사 소통이 나타난다. 그동안 얼마나 이런 마음 전달법을 잊고 살았던가 싶다. “두 줄로 포개어져 있”는 짧은 문장에 시선이 머문다. 그런데 엽서에 적힌 전언은 쉽게 읽을 수 없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다음의 탁월한 시적 비유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이 비틀거리는 새의 말을 쓸쓸한 발톱이 휘갈겨 쓴 마음의 잔해들”이기 때문이다. 쉽게 붙들 수 없는 마음의 갈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화자의 모습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계속 되지는 않는다.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붙들어서 “편의점에서 생수와 빵을”사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나무의자에 “녹지 않은 눈”이 가득 남아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고 화자의 의식 전환이 발생한다.“녹을 수 없는 눈”과 “녹지 않는 눈”의 차이를 생각한 후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즉 “엽서를 꺼내 그 두 줄의 문장에서 희고 간결한 새를”날려 보내게 된다. 시를 읽는 독자는 “눈”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고 “희고 간결한 새”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어쩌면 “녹을 수 없는 눈”은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야 할 짐, “녹지 않는 눈”은 화자의 의지에 달린 것 같다. 비록 엽서를 부치진 않았지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뜻하는“희고 간결한 새”를 날려 보낸다는 건 화해의 모드를 암시한다. 내게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을까. 여전히 녹을 수 없는 눈이 남아 있을까. 시를 통해 내면을 돌아보는 길에 들어선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파스칼 <팡세>)라는 말이 시를 읽으며 계속 떠 오른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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