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WCC(세계교회협의회)의 중앙위원, 독일 기독교민주당(CDU)의 지도자, 독일연방하원의원(1969~1981), 독일 개신교의 평신도대회(Kinchentay)장을 1964년에서 83년까지 여러 역임, 서베를린의 시장(1981~84), 독일(서독)의 제6대 대통령[5년 임기를 두 번 연임(1984~94)]. 때에 1990년 10월3일 0시(현지시간) 서독과 동독은 마침내 분단의 역사를 종식하고 하나 된 새로운 독일을 탄생시킨 독일의 통일 대통령으로 추앙 받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독일어: Richard von Weizsacker, 1920년 4월 15일 ~). 당시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실권은 없는 수상의 그늘 밑에서 의전적인 국가수반의 역할 밖에 못하는 한직이었다. 그러한 그가 대내외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독교는 ‘어떤 정치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실현해야 할 올바른 인간관을 제시해 준다’고 그의 저서 ‘독일의 역사는 계속 된다’(1983)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그는 기민당원으로서, 타 당원들인 “콜” 수상 측근들의 비난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정치적 소신을 간접적으로 밝히며 국민들의 의사를 결집시켜 나가는 지도력을 보였으며, 기민당 정치체제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노벨상 수상작가인 “하이리히 뵐”이 죽었을 때에는 그의 장례 행렬의 맨 뒷줄에 서서 따라 가기도하는 겸손을 보임으로, 대통령의 위치에서나 당의 입장에서도 상식이 아닌 예외적인 행동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자기 연설을 기록하는 담당관을 사민당 당원인 “엥겔하르트”를 채용하여 당내 일부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은 어느 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로 모든 정당 계층 사람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1985년 5월 8일 종전 4주년 기념연설에서는 나찌정권 패망의 역사를 회고 하면서 “과거에 눈을 감은 자는 현제에도 눈을 멀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나찌 하에서 고통과 범죄의 역사에 동참했던 독일 국민들을 향하여 “역사의 빚을 잊지 말고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사명을 다하자”는 기념사로 수백만 독일인과 이웃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출처 : 신동아 1987. 1. 별책부록 ‘이삼열’ 기고)

함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겸 오사카 시장이 '나치의 개헌 수법을 배우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발언을 "블랙 유머"라고 옹호했다가 세계 각국의 거센 비난에 일단 그 꼬리를 감추는 등, 그들의 침략의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는 7월 28일 열렸던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제 응원단이 ‘욱일기’를 흔들어 대는 모습에 격분한 한국 응원단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의 대형 걸개를 내걸었다 해서‘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한국의 민도(民度)가 문제"라고 비난했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닌가? 따라서 오늘의 독일에는 ‘바이츠제커’의 정신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반하여 일제는 연일 침략의 국민성을 되살리자고 외치고 있음에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해방 68년을 맞이한 우리 대한민국은 매국에 앞장섰음에도 더 큰 영화를 누리며,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횡포로 갈팡질팡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스도인들이여 깨어나자!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민국의 ‘바이츠제커’를 구하자! 그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이를 정치에 반영시킴은 물론, 정부의 입장과 다른 여러 계층의 의견들을 듣고 수렴하는 폭넓은 이해심과 진실성,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정치인 상을 확립함으로써 서독은 물론 서유럽 전체에 있어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가장 이상적인 국가 원수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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