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지난 1993년에 열반하신 성철스님의 일화가 있다. 불교계의 큰 어른이시라, 나라의 두 어른(박정희, 전두환)이 각기 스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나와 보지도 않고, “서로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이니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절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는 즐겁게 놀았다는 일화이다. 참 바보 같은 사람이다. 국사(國師)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다니.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권력에 기대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생명을 품고 산 구도자가 아니면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정신적인 부유함, 힘 있는 자에게 기대지 않고, 연약한 자와 함께 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자기 생에 대한 깊은 성찰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마다 자기 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작은 핏덩이와 만나게 된다.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강보에 쌓여 있던 나는 오로지 나를 돌보는 이의 손길에 의존해 양육 받은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그저 건강하게 자라서 사람 구실 잘하며 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있는 나는,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떤 도움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내 한 목숨 살고자 앞뒤 분간을 못하니, 지금의 나는 집에서나 사회에서나 사고무친이요, 두통거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음이 공허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허상에 기대서 마치 자기도 큰 사람인 척 하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이들이 좋은 대접받으며, 권력자의 옷깃이라도 스치고 싶어 안달이라면 이거야말로 자기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사고무친이다. 요즘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세상이 어지럽다는 말이 헛말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심판하겠다는 이들이 있다(렘 46:25). 모두가 제 힘 휘둘러 약한 자를 부려 먹거나, 자기보다 더 큰 힘에 기대서 몹쓸 짓만을 골라 했던 이들이다.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대에 이웃 나라들과 협력하는 거야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애오라지 미합중국에만 기대려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나라는 아닐 듯싶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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