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열 목사.
김근열 목사.

요즈음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탄소 중립이다. 그만큼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분명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한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행동에 나서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됐든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어 지구를 살리기 위한 같은 행동에 나선 것만은 박수를 친다.

그렇다면 탄소 중립이 왜 필요하며,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탄소 중립은 개인이나 회사, 단체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탄소 중립화와 순 배출 영점화, 탄소 제로라고도 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고 배출량만큼을 상쇄하기 위해 나무를 심거나 석탄, 화력 발전소를 대체할 에너지 시설에 투자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개발도상국들의 마음을 편치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이야 탄소 중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쉼 없이 자연을 파괴해 왔다. 그렇게 오늘의 부국강변을 만들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제야 발전 좀 해보려고 하니, 선진국들이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격이다.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에선 자기들은 실컷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성장해놓고선, 이제 와서 우리들의 발전을 막아?”라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환경오염은 어느 나라만의 위기가 아니다. 오대양 육대주 어느 곳에든지 똑같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물론 개발도상국들의 입장도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용인할 수는 없다. 대신에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모색해야 하며, 그들이 새로운 모델의 신사업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풍력발전소와 태양력발전소 등 자연 그대로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과 재원을 지원해줘야 한다. 개발도상국들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사업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도 수호하며, 국가 간 격차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무엇보다 탄소 중립은 거창하게 생각하면 국가차원의 개념 같지만, 어찌 보면 국가는 물론, 사회와 기업, 단체,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참해야만 이룰 수 있는 범세계적 차원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도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제는 어느 특정한 나라나, 개인에 의해서만 지킬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흔히 말하는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 버리는 참혹한 결과가 코앞까지 와 있는 상태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의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야 한다.

국가적으로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규제하고, 일상 삶에서 자연스럽게 환경보존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정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국회에서도 환경오염을 시급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 해결해야 한다. 여야는 서로의 정략을 위해서 생각하지 말고, 오직 환경오염을 막겠다는 일념 하에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개인 역시 간단하게 집에서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생활쓰레기도 분리배출을 잘해서 재활용할 것은 다시 써서 더 이상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교회도 녹색교회 운동을 벌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 안 쓰는 기도실이나 예배당의 불은 잘 끄고, 버스 운행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가까운 거리의 성도들도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이동하도록 유도하고, 냉난방 기구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될 수 있으면 줄여 쓰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국가와 정당, 단체와 개인,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을 때 비로소 탄소 중립이 온전히 이뤄질 것이다.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과감히 나서야 한다. 여기서 까지 머뭇거린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시인·본지 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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