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접시에 담다

숲정이 발치 아래
그림 같은 호수 멋져

우죽*에 앉은 철새
빗겨든 물그림자

때마침 
황새 날아와
물속 온통 새떼다

곤두박인 숲정이
머리로 딛고 서서

바람 약간 불어도 흰 몸매 파들거려
철새들 그냥 그대로
물 속 숲에 앉았다

준비해 온 접시에 호수 물 담았더니

거기에 숲이 잠겨
집에 갖고 간다며

양손에 힘을 실어
하산 길 에 나서다.

* 우죽: 나무나 대의 우두머리에 있는 가지

<성동제 시인>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문학예술』 서울 경기지부 부회장. 경희문화상(예술부문). 시조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시부문). 시집 『마중물 붓는 마음』 , 『숲을 접시에 담다』 등 24권 상재.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성동제 시인의 24번째 시집  『숲을 접시에 담다』 의 표제시 감상을 위해 고려 무신시대의 문신이었던 이규보의 「吟井中月(음정중월)을 들어 비교해본다.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속승려가 달빛을 좋아해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함께 한 병 속에 길어 담았네
倒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바로 깨달으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이 기울면 달도 사라지는 일을.

 이규보는 달빛을 술병에 담아왔고, 성동제 시인은 숲 그림자를 접시에 담아온 발상은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과 방법론은 각각 다르다. 이규보의 현장인 산속 달은 단일적인 사물이고, 성동제는 마을 부근에 있는 숲(숲정이)은 나무들로 복수 사물이다. 나무들이라면 복수지만 숲이라면 단수가 되어 공동체를 함축하고 있다. 이규보의 술병 형태는 담을 수 있는 그릇이지만, 성동제의 접시는 담기 불편하여 고난을 함축한 도구다. 이규보는 절이라는 현실도피적인 장소를 설정하고 있으며, 성동제는 현실에서 사는 집을 설정한 구도는 유사성과 함께 차별성이 극명하게 구분된다. 이규보는 사라지는 허무주의의 정서를, 성동제 시인은 ‘양손에 힘을 싣는’ 희망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상반성의 담론구조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즉 산속의 절은 현실에서 거리 둠인 탈속적인 불교적 모습이라면, 성동제 시인은 현실참여의 기독교신앙을 암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사물을 보고 시상이 서로 양극화를 이루고 있음은 형이상학적 사고에 따라 기인한다.

 달과 숲이라는 물속 음영의 시제를 가지고 사물시(physical poetry)를 넘어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로 전환시켜주는 창작기법의 확인도 큰 수확이다.  

 특히 /곤두박인 숲정이/머리로 딛고 서서// 바람 약간 불어도 흰 몸매 파들거려//에서처럼, 형상화라든가 감각화 모습은 창작능력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면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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