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교수
김재성 교수

알렌은 민영익의 탐욕을 목격한 후에 “차라리 국가를 위해서는 죽어야할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알렌의 평가는 정확했다. 민영익은 개인의 권세만을 탐하다가 나라를 구하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합병하자 중국으로 망명을 가서 사망하고 말았다.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서울에 있던 외국 공관원들은 불안에 떨면서 모두 본국으로 철수하기 쉬운 제물포 항구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알렌 선교사의 마음에는 영혼을 사랑하고, 상처받은 자들을 향한 열망이 있었다. 

“만일 우리가 할 수 있었더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없었더라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려고 여기에 온 것입니다. 

나는 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래된 깃발이 휘날리는 공사관에서 살 것이며,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할 것입니다.”

알렌이 조선 땅에 발을 붙이고 일할 수 있도록 튼튼한 발판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묄렌도르프였다. 존 헤론도 역시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조선 땅에 들여보낸 일군임에 틀림없었다. 뮐렌도르프는 1848년 독일 삭소니아 태생으로 경건주의의 본고장, 할레 대학을 다닐 때부터 법률을 전공하는 한편 동양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뜻한 바대로 청국 주재 독일 영사관에 근무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1882년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뒤에 개항을 하면서, 조선이 무역전문가를 찾기 위해 청나라에 요구하자 청나라는 뮐렌도르프를 추천한다. 그는 1882년 11월 17일 조선 왕실에 들어가 청나라 사신들과 고종을 만난다. 고종은 환대하여 외무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다 맡기고 조선에서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한다. 그는 조선식대로 이름을 “목린덕”이라 짖고 기와집에서 조선식 관복을 입고 기거하는 것, 음식까지 조선의 것을 따랐다. 조선으로 입국하는 외국사람, 특히 서양 사람이라면 조선 땅 한성에 들어서는 길로 묄렌도르프를 만나는 것이 당연한 순서로 되어 있었다. 

조선과 맞닿은 북쪽 청나라 국경지대에서는 서상륜을 비롯한 일부 조선인들이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인 존 맥킨타이어와 존 로스 목사와 접촉하고 있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만주에서 서상륜과 이응찬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서상륜은 성서를 조선어로 번역하면서 두 선교사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서상륜은 번역작업과 함께 목판(木版) 작업을 겸하여 인쇄하는 일까지 겸했다. 

1882년 가을에 심양 문광서원 간행으로 복음서의 일부를 출판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조선으로 들어와서 복음을 은밀히 전하기 시작했다. 로스 목사는 배편을 이용하여 조선으로 성경을 보급했고 그들은 묄렌도르프의 도움을 얻어 성경을 찾아 보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황해도 장연의 솔내에서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네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솔내에서 조선인의 손으로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      

9. 광혜원-제중원-세브란스 병원

알렌의 의술로 세워진 병원은 병마에 신음하던 한반도에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 새로운 현대의학이 들어오고,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등대가 되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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