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출애굽기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집트 탈출(출 1-18장)과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19-24장), 그리고 성막의 건립이다(25-40장). 이스라엘은 바로의 학정과 종살이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의 뜨거운 햇빛을 감내하고, 갖가지 불평과 굶주림, 갈등과 전쟁의 소동을 겪은 후에 비로소 자유를 맛보게 되었다(출 1-15장). 마찬가지로 출애굽기 25장에서 시작된 성막 건립은 언약 파기와 갱신(32-34장)이라는 큰 위기를 극복하는 복잡하고 기나긴 서술 끝에서 완성된다. 그 순간 구름이 회막을 덮고 야웨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출 40:34). 이 장면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와 흡사하다(출 19:16-18).

‘충만하다,’ 또는 ‘가득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동사는 말레(אלמ)다. ‘말레’는 앗시리아어나 아람어 등에서 ‘풍부하다, 완전하다, 충분하다’를 뜻한다. 문법적으로 칼, 니팔, 피엘 등 다양하게 쓰이고 구약의 용례는 ‘채우다, 성별하다, 완성하다, 보충하다, 완전케 하다, 준비하다, 모으다, 넘치다, 만족하다’ 등으로 번역된다. 말레가 주로 성막과 성전에 관련되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광야의 성막 완성과 더불어 말레는 두 차례 (덮다, 충만하다) 언급된다(출 40:34, 35). 한편 열왕기상에는 출애굽기 40장처럼 한 번은 ‘구름이 성전에 가득차고,’ 다른 한 번은 ‘야웨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다’(왕상 8:10, 11; 대하 5:13, 14)고 나온다. 이사야는 사뭇 다르게 야웨의 옷자락이 성전을 덮었다고 기록한다(사 6:1). 에스겔 역시 환상에서 성전에 가득한 야웨의 영광을 본다(겔 43:5; 44:4; 10:3). 이렇듯 구름, 또는 옷자락 등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하고도 영적인 현존, ‘야웨의 영광’이 강렬하게 느껴진다는 뜻의 다른 묘사다. 

이상에서 히브리 동사 ‘말레’는 성막과 성전에서 감지되었던 신적인 기운의 역동성을 개념화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는 신학 용어다. 시편에 의하면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다(시 14:2; 53:2; 80:4; 115:3). 예레미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가 하늘과 땅에 가득하지 아니하냐”(렘 23:24). 예언자에게 야웨는 성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하늘과 땅, 곧 온 세상에 현존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솔로몬의 성전은 물론이고 땅이나 ‘하늘과 하늘의 하늘’도 포용하지 못한다(왕상 8:27). 왜냐하면 야웨 하나님은 하늘과 땅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세상과 크기를 비교할 수 없으니 어디나 현존하시는 신학적 개념이 요구된다. 이른 바 편재하시는 하나님이다.

위 본문에서 야웨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다는 묘사는 신의 현존과 관련된다(사 6:1; 렘 23:24). 그러나 말레가 바다와 땅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활용된다면 가시적인(visible) 의미지만 성막과 성전에 충만하다고 할 때는 비가시적인(invisible) 상태를 암시한다. 더구나 말레는 간신히 채우거나 가뜩 차서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성막의 완공과 동시에 가득한 야웨의 영광은 신적인 힘의 살아 움직이는 충일(充溢)로 봐야한다. 일반적으로 번역된 충만(充滿)보다 충일(充溢)이 더 적절한 개념이다. 충만은 국소적 상태적 시각적인 표현이라면 충일은 비국소적 능동적 영성적 개념이다(시 23:5). 하나님의 현존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만질 수 없지만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비국소적이나 힘차게 일렁이며 영과 혼을 압도하며 일깨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야웨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고 할 때 하나님의 현존은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다. 편재(omnipresence), 또는 ‘어디나 계시는’(ubiquitous) 하나님을 성막과 성전, 특정한 곳에 가두는 형국이다.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며(사 44:6; 48:18), 이제도 계시며 앞으로도 여전히 동일한 분을 가리킨다면(계 1:8; 22:13) 충일이 더 적합하다. 성막의 건립이 동사 말레, ‘충일하다’로 마감되는 것은 자칫 야웨 하나님을 시공간에 국한되는 분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점을 경계한다(렘 23:24). 모세와 이스라엘이 성막을 완공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넘쳐났다(אלמ)는 것은 지성소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현존이 그 성막과 이스라엘을 넘어 온 하늘과 땅에 두루 임재하여 활동하신다는 신학적 은유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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