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7월 법의 달이다. 양심이 마비되어가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법정’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모두가 원리주의에 갇혀 이성과 합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성과 합리성에서 이탈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관념과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교회의 역사를 왜곡하며, 반 평화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관념을 내세워 지역감정도 부추긴다. 이로 인해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자리는 ‘돈’으로 대치되었었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다. 돈이 있어야 세습도 하고, 교단장 및 단체장도 된다. 장로, 안수집사도 된다. 또 돈 때문에 다툼도 일어나고, 분열된다. 믿음과 신앙으로 결정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돈이 있어야 행세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는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양심의 가책에서의 해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므로써 양심의 자명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분명 그릇된 양심은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 누구에게나 양심의 가책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인간 누구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 자신에게 범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필요하다.

문제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이 없다는데 있다. 분명 신앙을 내세운 양심에서 이탈한 행위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위이다. 성직자와 교인들은 흔들리는 양심 때문에 다수의 교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의 자책에서 고민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많은 양심수는 양심선언을 통해 자신의 양심을 지켰다. 

칸트의 말대로 양심은 내적 재판정의 역할을 한다. 과거 양심선언을 한 인사들은 양심으로 양심을 되찾기로 하고, 양심으로 폭력과 압력을 업었다. 이것은 양심의 승리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들은 양심을 다시 폭력 앞에 굴복될 가능성 앞에서 양심선언을 감행했다. 그런데 오늘 성직자와 교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양심을 마비시키면서, 맘몬과 바벨을 숭상하며,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내세워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관념으로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며, 도마평화(팍스)를 숭상한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은 양심을 마비시켜 가며, 성서의 법정신에서 이탈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데 중심에 서 있다. 하나님나라운동을 전제로 한 교회 언론도 여기에 편승해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언론은 양심이 마비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을 향해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는 예언자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 기능을 상실한 언론은 언론의 자유와 양심이 마비된 것이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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